이라크를 공격하던 날의 워싱턴DC.드물게 화창한 봄날을 맞아 국회의사당에서 링컨기념관으로 이어지는 내셔널 몰(국립공원)은 가족단위 소풍객들로 북적댔다. 이들은 벚꽃 축제가 열리는 내셔널 몰 옆 제퍼슨기념관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벚나무들은 지난주까지 이어진 추위 탓에 꽃망울을 머금지 못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화창해진 날씨만으로도 상춘객들은 즐거운 듯했다. 몰 중간에 있는 워싱턴대통령 기념탑에선 연날리기 대회가 열렸다. 각양각색의 연을 들고 나온 가족들의 얼굴엔 봄날의 윤기가 넘쳐 흘렀다. 주변 도로는 주차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다. 워싱턴의 내셔널 몰은 워싱턴 시민들의 쉼터이자 세계적인 관광지다. 역사와 자연,문화와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9·11테러 때는 부분적으로 통제됐다. 이라크 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당시와 비슷하게 스산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지대공미사일까지 배치됐다. 그런 몰이었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봄날을 즐기는 사람들 뿐이었다. 전쟁 직후 매일 한국에서 안부 전화를 받는 기자에겐 의외의 풍경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길건너 백악관으로 발길을 돌리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수백명의 시위대가 백악관을 향한 행진을 시도했다. '석유를 위한 유혈 반대'.수없이 들어온 함성이었다. 새로운 목소리도 들렸다. '충격과 공포 대신 사랑과 용서를'.이번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충격과 공포작전'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추가된 것이다. 시위대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승리는 미군이 하겠지만 젊은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할 부모들은 어떻게 위로해야 하느냐며 목청을 돋웠다. 반전의 함성은 뉴욕 샌프란스시크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메아리쳤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몰과 백악관 앞 풍경은 이렇게 달랐다. 좁게는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미국 국민들의 찬반 논쟁,넓게는 세계 각국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분열의 골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었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