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2002 가을 컴덱스(COMDEX)'는 '캄덱스(CALMDEX)'였다는 게 현지의 평가다. 전시회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세계 IT업계의 대잔치'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한(Calm)' 전시회였다는 얘기다. 참가업체가 예년 절반수준인 1천여개로 줄어들었고 방문객은 9·11 테러사태가 있었던 지난해보다 30∼40% 감소했다는 게 전시회 관계자들의 말이다. '컴덱스 특수'를 잔뜩 기대했던 라스베이거스도 별 재미를 못봤다. 한 택시기사는 "11월 중 가장 큰 행사인 컴덱스가 열렸는데도 길거리 사람 숫자는 전혀 늘지 않았다"며 불평을 늘어놨다. 특히 9·11 사태 이후 불황을 겪고 있는 호텔업계의 경우 파크 플레이스 엔터테인먼트 그룹 톰 갤러허 회장이 경영부진을 이유로 사임했다는 소식이 전시회 기간 중 전해져 쓸쓸함을 더했다. 이 그룹은 라스베이거스의 명물인 시저스 팰리스를 비롯 발리스 힐튼 플라밍고 파리 호텔 등을 거느리고 있다. 컴덱스 열기가 이처럼 식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독일 하노버의 '세빗' 등 전문화된 경쟁 전시회의 활성화가 꼽힌다. 통신 게임 보안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방송 등 각 분야에서 전문화된 전시회가 세계적 규모로 성장함에 따라 IT기업들은 이들을 더 선호하고 있다. IT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가 참가하는 '백화점식 전시회'인 컴덱스에서는 기업들이 원하는 깊이와 폭을 얻을 수 없고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경기가 호황이고 기업형편이 괜찮을 때는 컴덱스 같은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이 PR도 되고 이미지 제고에 보탬이 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 보인다. 두번째는 IT산업의 서비스화 경향을 들 수 있다. IT기업들은 최근 들어 제품 생산에서 탈피,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솔루션 서비스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제조업만 갖고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데 반해 서비스를 함께 제공할 경우 부가가치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안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제품을 이용해 보안 네트워크 서비스를 파는 식으로 기업구조가 바뀌고 있다. IBM이 대표적인 예다. IBM은 컴덱스 기간 중 앞으로 3년간 10억달러의 연구개발(R&D)예산을 전통적인 IT분야에서 컨설팅 및 컴퓨터서비스 분야로 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제품개발보다는 고객이 원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IT기업들의 이같은 서비스화 경향은 볼거리 위주의 전시회에 대한 필요성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세번째는 IT산업의 활로를 열어줄 기발한 아이디어나 신제품들이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이번에도 여러 새 제품들이 선보였지만 획기적인 것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컴덱스의 전성기 시절엔 개막도 하기전 무슨 제품이 발표되고 어떤 테마가 주류를 형성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돌았으나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을 정도로 '색다른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IT 경기 불황에서 찾을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이익창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기업들로선 전시회 참가도 손익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상당수의 IT업계 종사자들은 여전히 IT산업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빌 게이츠,스콧 맥닐리,칼리 피오리나 등 IT업계 거물들의 연설에도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 기업인은 "그들은 2∼3년전부터 낙관론을 말해왔지만 실현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컴덱스의 명성은 빛바랜 낡은 교과서의 한 장쯤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c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