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축구팀의 실력이 대폭 향상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그 원천으로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주목받고 있다. 경제학자인 필자는 히딩크 감독 저력의 원천을 '투명성'에서 찾고 싶다. 압축성장을 이끌어온 한국경제 모델이 그 한계를 노정한 외환위기 이후 외부의 압력에 의해 영미식 모델을 수용해 성과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은 그동안 별 실력 향상 없이 헤매던 한국축구가 외국인 감독을 맞이하고서야 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세간에서 '한국은 밖에서 압력이 들어와야 바뀌지 절대 스스로는 바뀌기 힘들다'고 한 말은 이런 상황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아마 일본도 개혁의 모멘텀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과 같은 '위기와 외부압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국축구와 한국경제의 성과 개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외국인 감독의 실력이 뛰어나고,영미식 모델의 장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필자는 '투명성 확보'를 주요인으로 꼽고 싶다. 과거 한국의 축구 대표 선발은 하나의 이권이 걸린 사안처럼 로비와 연줄이 작용하는 '정치적' 사안이었다고 한다. 대표 선발에 대한 감독의 권한도 제한적이었고,기준도 실력 뿐만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선발된 선수단의 기량이나 이들에 대한 감독의 권위는 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표단의 경우는 히딩크 감독의 책임 하에 '기량만을 기준'으로 뽑혔다는 면에서 투명성을 확보한 것 같고,바로 그 때문에 감독의 권위와 리더십이 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스타로 떠오르는 막내 박지성을 대표로 뽑았을 때 '왜 저런 선수를 뽑았을까'하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그 선수와 같은 지역이나 학교를 나온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바로 순수하게 실력 때문에 뽑았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리라.우리는 바로 이런 사례에서 절차와 과정의 투명성의 중요성을 본다. 최근 엔론사의 사례 등으로 미국자본주의의 투명성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미국경제가 부담하는 비용을 보면,투명성의 중요성이 새삼 인식된다. 투명성이 사라지면서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해 '나를 따르라'하는 리더십 혹은 카리스마도 많이 훼손되었다. 즉 러더십도 투명성이 뒤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추진한 개혁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등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투명성은 많이 제고되어 이런 것이 주가 상승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 증거는 최근 집권당의 인기도에 치명타를 가한 각종 경제 부패 사건들이다. 이는 복표 사업자 선정,아파트 분양 과정 등이 모두 투명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온 규제 완화와 개혁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투명도 향상이 제한적인 이유는,이 문제가 각종 제도와 문화,사람들의 의식과 관행의 영역에 걸친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여기서 제도란 단순한 법률 조항의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의 외국인 투자 제도는 이제 세계적 수준을 달성했지만,실제 집행 상에서는 투명하지 않음을 경험으로 실감하고 있다는 외국인들의 의견에서도 드러난다. 노사관계에서 최대의 관건은 '노사간 신뢰'인데,이는 현재의 회사 상태와 운영에 대한 투명성 없이는 구축이 불가능하다. 한계사업을 퇴출시키는 사업 구조조정도 대상 기업의 가치 평가가 기본인데,이도 회계장부의 투명성 문제다. 기업지배구조 개혁에서 쟁점 중 하나였던 사외이사 도입도 그 가장 중요한 효과는 당장 회사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기보다 기업 운영의 투명성 제고와 이를 통한 투자자 안심 효과 및 주가상승 효과라는 것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사회 및 경제가 또 한번 더 투명해지고,시장경제 효율성의 전제조건인 '시장 앞의 평등' 달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를 기대해 본다. kenneth@sn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