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2차투표는 '르펜 바람' 저지를 위한 국민투표의 의미를 가졌다. 2차 투표는 '시라크 대 르펜'의 대결이 아니라 1차 투표에서 불어닥친 극우돌풍을 잠재우는 동시에 극우파 부상으로 땅에 떨어진 프랑스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좌우를 초월한 범정파적 투표였다. 1차투표 전까지만 해도 자크 시라크 현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것인지는 아무도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극우파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가 사회당 후보인 리오넬 조스팽총리를 제치고 2차투표에 진출한 순간 시라크 대통령은 재선이라는 과실을 손안에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그의 재선 성공은 르펜 급부상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으며 시라크-르펜대결은 통상의 선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싱거운 승부였다. 1차 투표전까지만 해도 조스팽 총리와 당선 가능성 50대 50의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시라크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이처럼 전적으로 르펜 바람 때문이라고할 수 있다. 르펜 후보가 집권 사회당 후보인 조스팽 총리를 제침으로써 극우파가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프랑스 공화국 사상 초유의 정치이변이 연출되자 시라크 대통령은일약 르펜 및 극우파 저지 운동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르펜의 2차투표 진출이 확정되자 시라크가 속한 우파는 물론 그 반대진영인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역시 일제히 시라크 지지를 선언했으며 유권자들에게 2차 투표에서 시라크 후보를 찍을 것을 촉구했다. 정치권뿐 아니라 노조, 학계, 경제계, 문화계, 체육계, 언론들도 잇따라 르펜규탄, 시라크 지지 선언에 나섰다. 유권자들은 1차투표일인 21일 밤부터 거리로 뛰쳐나와 르펜저지를 외쳤으며 반르펜 시위는 2주일 가까이 연일 계속됐다. 반르펜 시위는 노동절인 지난 1일 프랑스 전역에서 130만-150만명의 참여자를동원함으로써 절정을 이뤘다. 정치권과 여론 주도층은 르펜이 2차투표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서도극우파 부상이라는 '프랑스의 수치'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르펜 지지표를 가능한 억제하는 동시에 시라크 표를 최대화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서는 우파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좌파 유권자들의 시라크 지지여부와투표율이 관건이었다. 전통적 좌파 유권자들의 경우 르펜을 비난하면서도 시라크 지지를 유보한 채 백지투표 또는 투표 기권을 할 여지가 컸기 때문이다. 또 1차투표에서 두드러졌던 정치 무관심과 혐오를 감안할 때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2차투표에서 시라크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이유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이때문에 정치권, 언론, 사회 지도층은 투표를 독려하는 한편 좌파 유권자들에게 시라크 지지를 거듭 호소했다. 결국 프랑스의 일체화된 르펜 저지 전선은 시라크의 압도적 승리를 낳았으며 시라크 대통령은 극우 태풍의 한가운데서 재선 승리를 낚은 가장 운좋은 인물이 됐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