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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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니 위버의 진실'은 피노체트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칠레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죽음과 소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여주인공 파올리나는 군사독재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도피한 남편 제라르도 대신 잡혀 성고문을 당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남편은 과거의 악행을 조사하는 인권위원회의 대표로 임명되지만 파올리나는 15년전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작은 소리에도 권총을 꺼내드는 등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자동차가 고장난 남편을 데려다 준 의사 미란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파올리나는 자신의 고문범임을 직감한다.
눈이 가려진 채 성폭행당하는 동안 들리던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곡 '죽음과 소녀'CD가 차에서 발견되자 범인임을 확신한 파올리나는 미란다를 위협,자백을 받아내려 하지만 제라르도는 인권과 법을 내세워 말린다.
무법상태의 밀실에서 당한 일을 법으로 심판할 수 없다고 믿는 파올리나는 권총위협과 고문에도 미란다가 잡아떼자 그냥 처형하기로 한다.
그러나 완강히 부인하던 미란다가 유죄를 인정하는 순간 파올리나는 미란다를 풀어주고 만다.
영화는 독재 치하에서 일어난 참혹한 인권 유린과 세상이 바뀌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냉정하게 그려낸다.
파올리나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다.
범인이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미란다가 죄를 시인하는 순간 파올리나는 15년동안 자신의 삶을 억압했던 무섭고 더러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
87년의 수지 김 사건이 실은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를 정권호도용으로 이용하기 위한 당국의 조작이었음이 밝혀진 데 이어 73년 간첩으로 몰렸던 최종길 전 서울대법대 교수의 죽음도 타살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수지 김이나 최 교수의 가족이 원하는 건 진실 규명과 함께 국가와 관련자들의 공식적인 사과다.
진상규명은 국가의 과제거니와 관련자들은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어야 한다.
반인간적 범죄에 공소시효 따위는 문제될 수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