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의 상당수 환자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고뇌가 담기게 될 것이다. '복잡한 수속을 거쳐 힘들게 의사를 만났다. 생업에 바빠 병원 왕래가 힘들다. 그래서 되도록 안전하고 보다 빨리 낫게 해주는 약을 처방 받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약효가 좋고 부작용도 없는 약은 보험혜택이 조금 밖에 안돼 진료비 걱정이 앞선다. 아이 과외비도 줘야 하는데,의사에게 형편이 안좋다고 말해야지…. (몇달 뒤)나와 같은 질환을 앓던 사람은 벌써 나았는데,난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은 더 많이 빼앗기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비싸더라도 잘듣는 약을 써달라고 하는건데. 좋은 약은 의료보험 혜택을 적게 주고 환자 본인 부담으로 돌려놓은 현행 의료제도가 문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말 약제비의 보험지출 절감을 위해 고가약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금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약의 종류에 따라 종전보다 2배 이상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예를 들어 1천원짜리 관절염 치료제가 있다고 하자. 종전엔 약값의 20%(2백원)만 환자가 부담했으나,제도가 바뀌어 정부가 보험자부담 상한선(참조가격)을 5백원으로 정할 경우 환자는 보험혜택을 받는 상한선인 5백원의 20%(1백원)를 부담하고 나아가 보험적용이 안되는 나머지 5백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환자 부담금은 종전 2백원에서 6백원으로 무려 3배 늘게 된다. 만약 브랜드별로 가격차이가 큰 의약품의 경우 당국이 건강보험 급여지출을 줄이기 위해 참조가격을 낮게 책정하면 환자의 약값 부담은 경우에 따라 종전의 10배가 될 수도 있다. 정부의 이같은 시안은 '혹 떼려다 혹 붙이는'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저렴한 의약품일수록 상대적으로 더 오래 입원 치료하고,부작용에 의한 고통을 더 많이 겪어야 한다.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늘어나고,그렇게 되면 정부의 의료재정 지출액은 더 증가하기 때문이다. 참조가격제는 특히 저소득층 환자들이 혁신적인 좋은 약을 사용할 기회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혁신 의약품에 대해 정부가 병의원에 주는 보험급여를 조금밖에 적용하지 않아 처방률이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소득층 1백50만명은 좋은 약을 쓸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의약품 부작용 사망자수가 에이즈 환자 사망자보다 많다는 WHO(세계보건기구)의 통계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의사단체들도 '저질 진료를 하란 말이냐'며 성명을 내고 있지 않은가. 참조가격제는 또 약품가격에 대한 정부통제를 의미하는데,정부통제 및 규제는 추가적 행정지출(인력 자료수집 적용 운영 등)을 발생시킨다. 노르웨이의 경우 10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참조가격제를 포기했다. 네덜란드는 국민불만이 커져 정책을 수정했다. 참조가격제를 최초로 도입한 독일도 의약품 지출을 억제하는데 한계를 드러내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정부가 값이 저렴한 약이나 복제 의약품을 처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보험급여 지출을 줄여 보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1천억원의 약제비가 줄어들지는 몰라도 환자들에게 종전보다 몇배나 더 약값을 부담 지우고,결국은 의료재정 지출도 더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참조가격제는 또 같은 질병에 대해 서로 다른 처방약의 내용과 약값 등을 둘러싼 환자와 의사,약사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불신이 야기되어 그동안 애써 구축해온 기존 의약분업 체계마저 위협할 수도 있다. 차라리 민간보험회사에 맡긴다면 보험회사들이 과잉진료 등을 감시하는 자동장치가 마련될 것이며,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정망 조치만 취하면 된다. 그러면 지체된 한국의 민간보험 시스템도 발전할 계기가 되며,의사가 혁신적인 의약품을 걸림돌 없이 처방함으로써 신약의 수요가 커지면 보험회사가 제약회사와 약값 할인 교섭을 통해 약값을 낮출 수도 있다. ◇필자 약력=△미국 미네소타대 수학 전공 △아이오와주립대 경제학 박사 △의보재정 정책 자문,저술 활동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