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가뭄 속에서 나는 요즘 '태종의 비'를 떠 올린다. 태종(太宗)은 몇차례의 쿠데타를 통해 조선 왕조 제3대 임금이 되었다. 그리고는 18년 동안 임금 노릇을 하다가,왕위를 셋째아들 충령대군(忠寧:世宗)에게 물려주었다. 이후 상왕(上王)으로 4년을 더 살다가 1422년 5월10일 세상을 떠났다. 바로 이 대목에서 '태종의 비(太宗雨)'란 말이 탄생했다. 19세기초 우리나라 풍속을 소개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라는 책엔 '태종의 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초열흘은 태종이 죽은 날이다. 이날이면 해마다 비가 오는데,이를 태종의 비라 한다. 태종이 죽으면서 세종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고나서도 알 수가 있다면,오늘 비가 오게 하겠다라고 했는데,그후 정말로 해마다 비가 온다…' 몇년 전 이 시기의 TV역사 드라마에서도 이 장면을 묘사한 적이 있다. 태종이 죽으면서 그 때의 가뭄을 너무나 안타까워 하더니,임종하는 순간 비가 쏟아지더라고…. 바로 이에 관한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조선시대 야사에는 흔히 이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임진란 전에는 늘 오던 '태종의 비'가 거르더니 왜군이 침략했더라는 기록도 보인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심지어 개화기의 국어 교과서 '고등소학독본'(1907년)에도 이 이야기는 실려 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다. 내 연구로는 태종이 죽던 해의 5월은 가뭄이 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태종이 죽을 때 그런 말을 남겼다는 기록도 당대기록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임진란 이전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임진란 이후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역사속의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거짓말은 어느 진실보다도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다. 실제로 태종은 임금 노릇하는 동안 특히 가뭄에 대해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여러 가지 다른 재이(災異=자연의 이상 현상)도 그를 괴롭혔고,그런 재이가 있을 때마다 태종은 자기 정치 잘못으로 그런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고 자책하는 일을 거듭했다. 하지만 특히 가뭄에 대해 그는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꾸짖었다. 태종은 네번 왕위를 물러나겠다고 하는데,그 때마다 재이에 대한 책임론을 폈다. 특히 1416년 5월 가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뭄의 연고를 깊이 생각해 보니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무인·경진·임오의 사건이 부자·형제의 도리에 어긋남이 있었던 때문'이란 것이었다. 그가 말한 사건들은 정적(政敵) 정도전(鄭道傳)과 형제들을 처단한 일을 뜻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태종은 형제까지 죽이며 잡은 정권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세번째로 선위(禪位)를 표명했던 1409년 50세 넘으면 선위해도 좋겠다던 신하의 말처럼,그후 9년이 지나 50이 넘자 그 이듬해 기다렸다는 듯이 임금 자리를 아들에게 넘겼다. 이렇게 가뭄을 크게 걱정했던 태종의 태도 때문에 해마다 그가 죽은 5월10일에는 비가 내린다는 '태종의 비'라는 전설이 생겼음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이 시대에 가뭄을 임금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또 실제로 정치 잘못한다고 가뭄이 일어날 이치도 없다. 특히 지금 심각한 가뭄을 경험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과 북한이 '정치'때문이란 의미도 아니다. 앞으로 지구 전체의 정치에 따라 인류의 장래는 크게 좌우 될 수밖에 없는데,인류의 장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연의 이상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 확실해서 하는 말이다.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달 때문에 인류는 지금 존망의 위기에 서 있다. 새만금과 유전자 조작,원자력 발전과 미사일 방어(MD)….그리고 보다 더 크고 심각한 수많은 과학기술상의 정치적 결정이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몰고 올지 지금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태종이 죽은 음력 5월10일이 올해는 윤4월이 끼는 바람에 양력 6월30일이 된다. 정말로 6월 말일 '태종의 비'가 내릴 때까지 가뭄이 계속된다면,세상은 이미 더 할 수 없는 재앙을 경험할 판이다. 그러니 우리는 '태종의 비'가 더 일찍 오기를 기다리며 스스로 반성해 보자.우리 정치는 과연 재앙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지나 않은지….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