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은 ‘신판 척화비 새 로마자표기법’이란 제목의 글에서 ‘매큔라이샤워 방식’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을 비판하고 있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강 이사장이 잘 지적했다시피 일제시대에 미국인 매큔과 라이샤워가 공동으로 만든 것이다.

이 표기법의 속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 한국어를 얼마나 왜곡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명색이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어의 음운적 특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일례로 ‘동일’과 ‘통일’은 Tongil,T’ongil인데 T’ongil의 어깻점(’)은 흔히 생략한다.

때문에 결국 둘 다 Tongil로 표기하는 것이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이다.

그것은 곧 어느 가족의 형제 이름이 ‘대식’과 ‘태식’이라고 할 때 형제의 이름을 똑같이 Taesik으로 쓰라는 것과 같다.

‘ㄱ/ㅋ’, ‘ㄷ/ㅌ’, ‘ㅂ/ㅍ’, ‘ㅈ/ㅊ’은 반드시 구별해서 표기하는 것이 로마자 표기법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미국인들의 귀에 ‘같은 소리로 들린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어의 구별을 무시했다.

이렇게 표기법을 만든 사람들의 귀에 ‘어떻게 들렸느냐’만을 갖고 만든 표기법을 언어 학자들은 ‘아마추어들의 작품’이라고 보아 제대로 된 표기법이라 보지 않는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큔과 라이샤워는 한국어에서는 아무 의미없는 차이에 지나지 않는 유성음과 무성음을 달리 적었다.

‘도동’은 Todong이라 적고 ‘독도’는 Tokto라 적는다.

왜 ‘도동’의 ‘동’은 d로 적어야 하고 ‘독도’의 ‘도’는 t로 적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한국인들은 알 수가 없다.

로마자 표기법이 한국인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모른다.

그러나 자기 이름과 주소 따위를 적어야 할 이들은 바로 한국인들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기법은 이미 바른 표기법이 아닌 것이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진작에 청산했어야 할 부당한 표기법’이었다.

이 부당한 표기법을 60년이 지난 이제서야 버리고 제대로 된 표기법을 갖게 된 마당에 여전히 구악(舊惡)을 그리워함은 어찌된 일인가.

더욱 아쉬운 것은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이 로마자 표기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표기법이 국수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오해일 뿐이다.

그동안 무시되어 온 한국어의 음운적 특징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게 되었으며,그것은 한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외국인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강 이사장은 어깻점이 컴퓨터 자판에 있고 반달표는 영어·라틴문자표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어깻점이 컴퓨터 자판에 있지만 인명 표기에서는 아무도 쓰고 있지 않다.

또 반달표는 영어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글자다.

Kimpo,Pusan에서 Gimpo,Busan으로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의 Bombay가 Mumbai로,Burma가 Myanmar로 바뀔 때 우리를 비롯해서 세계 모든 나라가 이를 따르고 있다.

지명 변경은 흔한 일이다.

또 Korea(韓國)는 굳어진 영어 단어다.

그러므로 로마자 표기법과 무관하다.

불합리한 제도가 있으면 합리적으로 고쳐 나가는 것이 미래를 지향하는 올바른 자세다.

그럴진대 내외국인 모두에게 편리하도록 바로잡은 새 표기법을 척화(斥和)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바른 로마자 표기법 마련을 위해 애써 온 모든 학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돌이켜 보면 1984년에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채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제라도 한국어의 특징을 잘 반영한 로마자 표기법을 정착시켜 로마자 표기의 혼란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가 아닌가 한다.

kimsej@chollian.net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27일자 9면 ‘다산칼럼’란의 강만수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