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 경제칼럼니스트 >

며칠 전 경제 분야의 어느 장관급 인사를 모신 자리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대우자동차를 GM이 인수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대우를 한국기업이
인수하면 대우는 좋든 싫든 한국 자동차산업 본부의 하나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GM이 인수하면 대우자동차는 GM의 글로벌 전략을 실현하는
하나의 하부 조직으로서만 존재한다. 그것이 한국 자동차산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 질문을 한 인사는 평소 경제에 있어 자유주의를 가장 열렬히 주장하면서
소위 가장 선진된 경제 논리를 편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어서 좌중을 다소
놀라게 했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 한국 자동차산업에 도움이 될까, 안될까.

대우차의 생산능력은 약 1백50만대로 한국 자동차 생산능력 약 4백만대의
5분의2이다.

대우차를 사기 위해선 적어도 40억~50억달러는 들어야 한다.

이 엄청난 덩치를 인수하는 GM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이겠는가.

GM입장에선 글로벌 전략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은 이 큰 덩치에서
이익을 내는 것이다.

미국같이 이익 지상주의 나라에선 외국 현지법인이 대규모 적자를 내면
그것은 기업의 연결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주당순이익을 떨어뜨리고 당장
주가를 떨어뜨리면서 최고경영자의 "목"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미국기업 같이 개별 영업단위의 자율성과 또 그에 상응하는 책임성이
보장되는 나라에선 글로벌 전략이니 뭐니 하기 이전에 그 영업단위가 우선
이익을 내야한다.

글로벌 경영전략은 그 다음 문제다.

GM이 대우차를 인수해 대우차로 하여금 이익을 내도록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현대나 기아보다 더 좋은 차를 더 싼 값에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GM이 가진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동원할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도전을 맞는 현대와 기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참으로 문자 그대로 생존을 건 처절한 싸움을 벌일 것이다.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디자인 개발을 위해 밤을 새우고, 원가를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고, 파업도 자제하며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글로벌 경쟁자를 맞은 한국 자동차산업은 일약 글로벌한 수준에서 경쟁하는
업체로 변신할 것이다.

그 결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업체로 단기간에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대와 기아가 이 싸움에서 져 GM에 국내시장을 대부분 내주고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이미 시작됐고 사실 피할수 있는 싸움도 아니다.

이미 세계시장에서 싸우고 있고 국내 자동차시장이 개방돼 외국차들이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

다만 이 싸움을 정면돌파식으로 하느냐, 슬슬 피하면서 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한국 자동차회사들의 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밖에 안된다.

지금과 같이 국내업체들끼리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해서는 우리 자동차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맥킨지 보고서의 핵심
포인트이다.

이러한 논리는 자동차 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 글로벌 플레이어를 적어도 한개는 끌어들여야 한다.

그리고는 그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글로벌한 수준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양어장안에 메기를 한 마리씩 넣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몇배나 건강하고 싱싱하다고 한다.

미꾸라지들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GM 또는 다른 글로벌 플레이어가 대우차를 인수하면 그것은 또한 우리
시민중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우선 대우차에 고용돼 있는 수만명의 종업원들이 실직의 두려움에서 실질적
으로 해방될 것이다.

대우차에 납품하는 수천, 수만의 납품업체들이 납품처를 잃을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대우에 돈을 빌려 준 수많은 은행들이 돈 떼일 걱정을 덜 할 것이다.

대우의 수많은 소액주주들은 주가가 올라 행복해질 것이다.

소비자들은 더 좋은 차, 더 싼 차를 타게 될 것이다.

기업이란 대주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힘없고 걱정 많은 숱한 소시민들의 삶이 달려있는 것이 기업이다.

기업이 소시민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느냐 하는 것은 많은 경우
대주주가 누구냐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GDP가 GNP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은 그런 의미다.

이런 모든 점들이 며칠 전 자칭 자유주의적인 경제계 인사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 scjunn@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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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미네소타대 경영학석사,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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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