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계에 최근 "사외이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초일류기업이 되려면 신속한 의사결정구조가 필요
하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반면 "사외이사제도와 같이 견제와 균형의 구조도 갖춰야 한다"는 얘기에는
고개를 저었다.

회사 실정을 모르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제약하는 권한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면서 이같은 생각은 점차 바뀌고 있다.

의사결정과정에 다양성을 주고 경영진의 독단적인 결정들을 보완하는 제도
로 사외이사제도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닛케이비즈니스 최근호는 지난 4월 열린 코카콜라 주주총회를 이렇게 묘사
했다.

"단상에 오른 것은 더글러스 아이베스터 회장겸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는 주주좌석의 맨 앞 줄에 앉아 있는 이사진을 향해 회사전략의 잠재력을
열심히 설명했다. 이사진중에는 벅셔 해서웨이, 워런 버핏 등 이름만 들으면
금방 알수 있는 저명인사들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잡지는 저명인사들의 면면보다도 이들이 이사로서 주주측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전했다.

사실 이사회는 주주를 대신해서 경영층을 감시해야 한다.

상법상 이사의 임무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기업 이사들은 주주총회장에서 회장의 뒤에 앉아 마치 경영층을
보필하는 것처럼 활동했었다.

그러다 보니 코카콜라 이사들이 앉은 위치가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다.

이사회 활성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폐쇄적이고 동질적인 이사회로는 글로벌시대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
에서다.

아직 일본에서는 사외이사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기업이 많지 않다.

소니를 비롯한 일부 기업에 국한돼 있다.

도입 논의만 활발한 실정이다.

논의의 주대상은 사외이사 활용법이다.

여기엔 미국기업임원협회(NACD)의 사외이사 자격기준이 참고가 되고 있다.

NACD는 사외이사 활동 기준으로 다섯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독립성을 유지할 수있어야 한다.

회사출신자는 물론이고 회사와 관련있는 컨설턴트 변호사등은 해당 회사의
사외이사가 돼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특히 2개 회사가 서로 상대방에 사외이사를 파견하는 관행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둘째 사외이사는 주주라는 관점에서 대해야 한다.

지난해 합병으로 재탄생한 시티그룹은 이사들의 보수를 현금이 아니라 주식
으로 전액 지급했으며 한동안 매각을 제한했다.

이들에게 업무용 자동차를 주거나 비서를 붙여주지 않으며 사무실을 내
주지도 않는다.

퇴직연금 건강보험과도 무관하다.

이사는 철저히 종업원이 아니라 주주의 대표라는 개념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사외이사에게는 될수록 회사의 주식을 많이 갖도록 한다.

종업원과는 구분되면서 주식도 보유하지 않는다면 사외이사들은 회사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는 돈을 빌려 주면서 사외이사가 주식을 갖도록 유도
하기도 한다.

넷째 사외이사들은 사내이사가 참석하지 않는 별도의 공식적 모임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은 이사회의 구성원이지만
이사회 안에 설치된 주요 임명위원회 보수위원회 등의 구성원은 아니다.

사외이사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사외이사는 그 사람이 몸담은 업종이나 국적 성별에 상관없이
폭넓은 분야에서 선발돼야 한다.

이사회 구성이 다양할수록 자기 업계 정보 외에는 무지한 경영진에게
유익한 조언을 할 수있다.

미국 업계에는 이사 선발기준에 대한 우스개소리가 있다.

"사업에 대해 잘 아느냐"를 기준으로 뽑는게 아니라 "사업에 대해 잘 아는
경영자를 선발할 줄 아느냐"를 고려해서 이사를 뽑는다는 것이다.

소니 오릭스 HOYA 등 사외이사제를 도입하는 회사가 일본에서 잇따르고
있지만 그 운영은 NACD의 활용법에 아직 미치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주주와 경영의 대표를 한 사람이 맡고 있다는 의미인
"대표이사 사장"이란 직함에서 어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 박재림 기자 tr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