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서로 < MIT대 교수 >

지난 90년 이전까지는 미국경제의 앞날이 어두웠다.

반면 일본 경제의 전도는 밝았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 상황으로 역전됐다.

80년대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자동차 철강등의 산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일본은 당시 이 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기술을 축적, 미국을 멀찌감치 앞서 갔다.

이때 미국기업들은 경쟁에서 뒤져 앞날이 암울했다.

90년대 들어 미국과 일본의 상황이 역전된 것은 정보통신을 위시한 제3의
산업혁명 덕분이었다.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미국이 확실하게 일본을 앞서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의 기술공학 강의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 도쿄대에서는 기존의 기술이나 제품성능을 1%만 향상시켜도 그 학생에
게 A학점을 준다.

그러나 미국의 MIT나 스탠포드 버클리대에서는 B-밖에 받지 못한다.

그대신 미국 대학들은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학생에게는 A학점을
준다.

설령 그것이 실생활에서 제대로 구실을 못한다 해도 후한 점수를 준다.

미국에서는 대학강의에서부터 창의적 사고를 중시한 것이 첨단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인텔의 경우도 미국의 부활을 상징한다.

인텔은 지난 84년에만 해도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일본 기업에 비해 경쟁력있는 D램을 만들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인텔은 방향을 돌려 D램을 포기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세 계 반도체시장을 석권했다.

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회장은 90년대의 미국호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인류역사상 그동안 세계 최대의 갑부는 땅이나 황금 석유등 천연자원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게이츠회장은 이같은 천연자원없이도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됐다.

90년대 붐을 이룬 지식산업의 최선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국 경제에도 우려할 점이 적지 않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무역적자는 결코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미국
경제의 아킬레스 건이다.

그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은 무역적자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해왔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무역적자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경제학자들의 경고가 양치기소년의 거짓말처럼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과거에 미국경제가 이것 때문에 흔들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국내 자산을 처분해 엄청난 무역적자를 메꾸어 왔다.

외국투자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어 주식과 채권등 미금융 자산을 대거
사들였다.

아직까지는 미국 경제가 튼튼해 외국인들이 미국 자산을 계속 사들일 것이고
당분간 무역적자로 인한 경제파국의 염려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언젠가는 미국경제도 하강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고 외국투자자의
발길도 뜸해질 것이다.

그때엔 무역적자로 인해 미국경제가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계층간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우려할만한 점이다.

미국 경제가 9년째 활황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중산층 남성의 실질임금은
90년초에 비해 5%나 떨어졌다.

"만조가 되면 모든 배가 뜨기 마련"이라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말이
무색진 것이다.

케네디 시절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승하면서 임금생활자 대부분(98%
가량)의 소득이 늘었다.

그러나 9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은 늘었지만 인구 60%의 실질임금은 감소
했다.

만조가 되었어도 60%의 배는 오히려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물론 직업의 성차별이 없어지면서 여성의 취업이 늘어나고 연간 노동시간도
길어지면서 여성의 임금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남성의 소득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계 전체소득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남성 근로자들의 임금격차 확대는 지식경제사회의 급속한 발전에 기인한다.

1,2차 산업혁명때는 노동인구가 소득수준이 낮은 농업에서 제조업 광업
건설업등으로 노동인구가 옮아갔다.

기업주는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돼 부를 더욱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기업주와 노동자간의 소득격차는 요즘처럼 크진 않았다.

지식기반경제에서는 노동인구가 고임금직종이나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으로
흘러간다.

서비스산업은 과거 농업과 유사한 산업으로 임금이 낮다.

미국의 탄력적인 노동시장구조도 임금을 낮춰 소득격차를 키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미국 경제를 견인해온 높은 생산성도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과거에도 일정 기간동안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가 다시 후퇴하는 양상을
겪었다.

일각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에 따른 생산성신장 효과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미국경제도 언젠가는 하강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 정리=박영태 기자 py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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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최근 미국신문 새너제이 머큐리뉴스에 실린 레스터 서로 MIT대
경제학 교수의 기고문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