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토 루지에르 < WTO 전 사무총장 >

지난 반세기동안 무역장벽 붕괴, 교역증가, 국경을 뛰어넘는 기술이전,
국가간상호 의존도 증가 등 글로벌화가 꾸준히 진행돼 왔다.

지난 50년이래 세계교역량은 14배나 급증했다.

세계 생산제품중 교역되는 상품비중은 7%에서 25%로 늘어났다.

지구상에서 하룻동안 수조달러어치의 교역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무역과 자본이동뿐 아니라 통신 문화 등에 의해서도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TV 이동전화 인터넷은 경제권뿐 아니라 인류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글로벌화는 경제는 물론 국가간 관계도 바꾸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글로벌화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축으로 95년 창설됐다.

이 기구의 설립목표는 일정한 룰에 따라 세계경제를 하나로 만드는 보편적
무역체제를 세우는 것이다.

WTO는 1백34개 회원국을 확보했고 러시아 중국 등 32개국이 현재 가입을
위해 협상을 진행중이다.

회원국의 5분의4는 개도국이거나 체제전환국이다.

WTO는 그동안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정보기술 통신 금융부문 등을 협상의
무대로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또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국가간 무역분쟁을 조정하는 기구를 마련,
글로벌화에 따른 조정역할을 맡아왔다.

오늘날 세계는 베를린장벽의 붕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목전에 둔 3번째 밀레니엄시대는 세계화와 기술 사이버공간으로
특징지어진다.

과거의 정책수단이나 접근방식에 더이상 의존할 수 없게 됐다.

글로벌화에 따른 상호의존성, 금융체제의 안정성, 노동기준, 인권 등과
무역의 관계, 빈부격차와 불평등 여권신장 등 풀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면 이같은 도전을 풀어갈 방안과 비전은 무엇인가.

첫째 총체적인 리더십의 구현이다.

개도국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리더십이 그것이다.

다중화하고 있는 세계 현실에 비춰 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G7(선진7개국)이나 G8(선진7개국+러시아)이 갑자기 덜 중요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선진경제가 더이상 국제적 리더십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협력과 합의에 중점을 둔 새로운 리더십의 개념이 필요해졌다.

둘째 세계는 상호연결된 퍼즐조각을 끼워 맞춰야 하는 정책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인권 환경 무역 건강 금융 등을 더이상 따로 떼어서 다룰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국제적 협력과 합의가 절실해졌다.

셋째 이들 다원화된 이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포럼이 필요하다.

글로벌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이슈에 공동대응할 수 있는 각국 지도자들의
모임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유엔총회에서 합의를 본 밀레니엄 정상회담은 글로벌화에 따른 다양한
이슈를 점검할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공통된 글로벌 전략과 행동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로 각국의 공통된
전략수립이 요망된다.

지구촌의 가난과 불평등 해소, 환경보호, 무역장벽 완화 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기구 사이에 단일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전략은 각국 정부의 실리보다는 사람 중심이어야 하고 각국의
상호의존성과 글로벌화를 공고히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글로벌체제와 국가 주권 사이의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국경을 뛰어넘는 글로벌 협력과 합의를 의미한다.

국가간 상호의존성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국제협력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성을 고집하는 것 자체가 "고립"을 자초하는 꼴이 된다.

세계화로 재편되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는 접근방법이나 시각뿐 아니라
국제기구도 일신돼야 한다.

글로벌화한 세계는 변화의 시대에 걸맞게 국제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확립해야 한다.

각국의 관심사와 이해관계가 고루 반영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글로벌화를 둘러싸고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않다.

하지만 상호의존적 세계질서를 증진시켜나갈 합리적 대안이 제시되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글로벌화를 추진하거나 각각 분화된 세계로
회귀하는 선택문제에 처해있는 셈이다.

그러나 분화된 세계로의 회귀는 국수주의와 인종차별주의 등을 심화시킬
소지가 많다.

이것은 인류가 원하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인류는 그동안 유토피아는 꿈이고 꿈은 곧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해왔다.

얼마전 인류는 전쟁 없이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러시아와 동유럽이
붕괴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서유럽은 무역 경제 통화 정치 등 모든 면에서 통합, 단일 공동체를
형성했다.

세계는 이제 힘이 아닌 규칙에 따라 변모하고 발전하는 기로에 서 있다.

< 정리=박영태 기자 py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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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레나토 루지에로 WTO 전 사무총장이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세미나에서 사무총장 자격으로는 마지막으로 행한 공식연설 내용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