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선단식 경영방식을 지양하고 주력업종에만 집중한다면 새로운
주력산업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일본의 기술에 못미치고 중국의 싼값에
쫓기는 우리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국제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때마침 산업자원부가 지난 16일 공업발전심의회에 상정한
"21세기 한국산업의 비젼과 발전전략"에서 주력산업을 중후장대한 장치
산업에서 경박단소한 지식기반형 첨단산업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를 위해 앞으로 5년동안 1백20조원을 투입해 신소재 정밀화학 정보통신
등 27개 성장산업을 적극 육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
(KDI)은 지난 20일 발표한 "중장기 산업정책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고도의 과학지식 및 내수기반이 부족한 우리형편에 미래형 첨단기술산업을
새로운 주력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고 이보다는 기존
주력산업을 고부가가치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늦었지만 이런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만은 이미
80년대 중반에 한정된 투자재원을 가지고 중화학공업과 첨단기술산업중 어느
쪽을 육성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활발한 논의를 벌였다. 결국 중소기업
위주인 산업구조로는 중화학공업 육성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기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에 힘쓴 대만은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우리의 경험에 비춰 봐도 60년대 중반에 시작된 경공업 중심의 수출
전략이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지만 중공업 육성정책은 이미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돼 80년대 중반이후 "3저 호황"때 활짝 피어났다. 마찬가지로 산업구조는
중화학공업 중심이지만 80년대 후반에 새로운 산업전략에 대한 논의 및 구조
조정이 없었기에 경제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앞으로 공공과 민간의 역할분담과 재원조달 등 보다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산자부도 지적했듯이 앞으로 정부역할은 공정하고
투명한 게임규칙을 만들고 감시하는 선에 그쳐야 하며 전략적으로 어떤 분야
를 육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실제로 투자재원
1백20조원중 정부가 담당하는 몫은 48조원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적자재정
속에서 어떻게 조달할지 불확실한 실정이다. 게다가 첨단기술산업은 중화학
공업에 비해 실패할 위험이 훨씬 커 어차피 민간주도로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산자부 방안과 KDI 주장은 어느 쪽에 좀더 비중을 두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며 말꼬리를 잡고 논란을 벌여서는 안된다. 당장 우리가 서둘러야
할일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차별
하는 기존의 행정규제들을 철폐해 모든 기업이 당면과제인 고용 및 부가가치
창출에 힘쓰도록 하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