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외환 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을 재정비하고
기업 경영구조를 투명화하는 노력이 시급히 진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등 세계 10여개국의 경제학자 1백여명으로 구성된
경제연구 포럼인 "프로젝트 링크"는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뉴욕 유엔본부
에서 연례 학술회의를 갖고 이같이 지적했다.

회의에서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주제로 발표한 윌리엄 쇼 세계은행
아시아담당 수석 연구위원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것은 만성적인 무역
적자와 기업들의 지나친 차입 경영 때문이었다"며 "정부 은행 기업등 각
부문이 투명한 회계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구체적인 개선책을 서둘러 마련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벨버른대의 맬컴 다울링 교수는 "아시아 경제의 향후 전망"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한국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며 최소한 2~3년간
은 심각한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을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핫머니에 대한 규제 장치를 만들지 않을 경우 제2,제3의 환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의 주제 발표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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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컴 다울링 < 호주 멜버른대 교수 >

한국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게 거의
확실하다.

이들 외의 다른 역내 국가들도 올해 성장률이 2~4%로 낮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99년을 고비로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등은 외환 위기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수출에 매달릴 것이고, 결국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치열한 수출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에따라 수출상품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이는 주로 선진국인 수입국들 쪽에서는 좋은 일이겠지만, 한국 등 해당국의
기업들에는 고통스런 과정이 될 것이다.

통화 긴축과 고금리 등으로 금융 비용이 늘어난데다,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가격이 크게 하락할 경우 기업들은
고전을 면할수 없을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런 악조건을 빨린 극복하려면 금융 시스템을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금융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혁할 경우 빠르면 1년 정도후엔 외환 위기라는
가시덤불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금융시스템 개선이 지지부진할 경우 경기 회복이 발목이 잡히고 말
것이다.

요즘의 일본이 그런 전형을 보여주는 좋은 반면 교사인 셈이다.

한국의 경우는 여기에 덧붙여 대기업들의 구조 조정이라는 큰 과제가 가로
놓여 있다.

"재벌"로 불리는 한국 대기업그룹들은 지난 95,96년을 전후해 막대한
자금을 차입했다.

이중 상당 부분이 외화표시 채무이다.

이런 판국에 원화환율이 폭락해 빛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한국 대기업들이 외국 자본을 대거 차입한 데는 나름의 이유도 없지 않았다.

해외 시장의 주요 품목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엔화절하로 수출하기가
어려워지자 활로를 찾기 위해 신규 사업에 앞다퉈 진출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는 적절치 못한 것이다.

수출 부진에다 외채 부담까지 가중됨에 따라 상당수 재벌그룹들이 부도
위기에 몰려 있다.

한국의 새 정부가 외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막대한 규모의 외채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부담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경제를 짓누를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올해는 내내 고금리와 통화 긴축으로 내핍을 강요당하는 가운데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성장 퇴보는 수입의 대폭 둔화를 동반할 것이다.

반면 원화 환율상승 등에 임입어 수출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수출 부문이 제아무리 호조를 보인다 해도 경기 전체를 떠받칠만한
힘을 발휘할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수출 호조와 수입 감소로 한국의 무역수지는 종전 국내총생산(GDP)의
2% 적자에서 3% 흑자로 반전할 전망이다.

물가 불안도 각오해야 한다.

환율 급락에 따른 수입 물가 폭등이 예정된다.

마이너스 성장과 내수 둔화가 물가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기는 하겠지만
10%선의 인플레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직까지 한국 경제에 이렇다 할 빛은 보이지 않는다.

수출이 기대만큼 호조를 보일지 확실치 않은 가운데 산업 생산은 하락을
면할수 없을 것이고, 재벌들은 악성 부채및 취약한 재무제표와 힘겨운
씨름을 벌여야 할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흔히 지난 94,95년의 멕시코 위기와 곧잘 비교된다.

실제로 두 나라의 위기 상황은 유사한 점이 많다.

당시 멕시코는 고정환율제 아래서 대규모로 해외 자금을 차입했으며 경상
수지도 엄청난 작자가 누적돼 있었다.

결국 외화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환율은 폭락했다.

그 결과 멕시코는 지난 96년에 6%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멕시코 정부는 신속하게 구조 조정에 나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들여 재정을 긴축하고 통화량을 조절했다.

금융산업도 합리화했다.

인접 국가인 미국은 팔을 거더 부치고 멕시코의 회생을 도왔다.

그 결과 멕시코는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한편 성장 행진도 재개했다.

이것이 시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경제 안정을 되찾을수 있게 처방된 약을 제대로
복용하는 것이 재도약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할수는 없다.

주변 국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멕시코의 경우는 대미 수출을 적극 늘림으로써 경기 회복을 앞당길수
있었다.

불행히도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같은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할 텐데,스스로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