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는 지금 1세기 전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역사는 "천상을 향해 끊임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라는 낭만적 발전사관에
젖어 있던 우리가 역사도 퇴보할수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으니, 이처럼 황당하고 서글픈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일본에 진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국가의 독립을 지키자는 국채보상
운동이 일어난 것은 구한말인 1907년의 일이었다.

당시에도 언론기관에서는 의연금 모금에 적극 나섰었다.

전국각지에서 돈을 절약하기 위한 금연운동이 전개됐고 부녀자들은
금비녀와 가락지를 내놓아 이에 호응했다.

요즘 전개되고 있는 "금모아 수출하자"는 캠페인과 근본취지는 한치도
다를 것이 없다.

"한국은 이제 거지가 됐고, 거지에겐 선택권이 없다"고 쐐기를 박은뒤
개혁을 촉구하고 있는 외국 언론의 논조에 한국인들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자괴감에 빠져있다.

40년 가까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가 이런 위기로 닥쳐오고 만 허탈감에
허둥대고 있는 것이 요즘의 우리다.

그러나 어쩌랴.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잘못이 무능한 정부에 있건, 무모하게 확장만 일삼아
온 기업에 있건, 멋모르고 흥청댄 국민에게 있건 나라가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중환자"라는 진단이 내려진 판이니...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경제정책이나 정치질서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의 의지와 단결력이 더 중요하다는 외국인들의 처방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의 현 위기상황의 원인을 외국인들은 여러가지로 분석해 내놓고 있다.

그중에는 한국인들의 "지배욕" "과시욕"을 지적한 학자도 있고,"교만"을
들추어낸 언론인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소득 1만달러의 나라에서는 해외여행이 필수적인 것으로
알았다.

롤스로이스로 허니문을 즐기고,캐딜락으로 장례를 치러야 "세계인"이 되는
줄 알았다.

"골프군 러브호텔면 가든리"라는 풍자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시골에
우후죽순처럼 건설된 골프장 러브호텔 갈비집은 어떻게 그 배경을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런 우리의 행태는 그동안 우리가 껍데기뿐인 "세계화"에 얼마나 몰두해
있었고, 선진국이 다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몇몇 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소위 문민정부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진 공직자들의 비리는 "자신의 통제
(률기)" "공공을 위한 봉사(봉공)" "백성에 대한 사랑(애민)"을 덕목으로
삼았던 우리의 전통적 지도자상을 깡그리 뭉개버렸다.

우리 선인들의 근검 청렴정신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고 부정부패속에서
만인이 만인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우리다.

목적의식도 방향감각도 없이 재화만을 탐내는 시류를 타고 흘러온 것이
우리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리스 고대철학사를 읽어가다 보면 도시국가 아테네의 몰락과정에서
지금 우리의 정신적 위기상황과 흡사한 경우를 찾아볼수 있다.

"인간을 만물의 척도"라고 생각했던 아테네 시민들은 이기적 개인적
자신감과 야망에 차 있었다.

전통이나 객관적 자연법칙은 더이상 그들의 기준이 될수 없었다.

"세계인"임을 자처했던 그들은 국가에 대한 관념도 희박했다.

국가의 흥망도 오불관언이었다.

따라서 사회나 국가가 확고한 정견이 없어지고 당리나 사욕이 횡행하게
됐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완전히 퇴폐한 국가로 전락했다.

이때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며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
소크라테스였다.

그의 이 유명한 말은 각자가 분수를 잘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하는 궁극적 원리를 자신에게서 발견하도록 본래적인
자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나 국가구성원으로서의
자기반성적 자각이다.

자기를 비판하려면 일단 자기를 부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주체적으로 파악된 현실은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될수 있다.

오즘 유행하는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이야기도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난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포리아(aporia)는 "길이 막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막힌 길앞에 서있다.

그러나 막다른 길은 절망의 신호가 아니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시련일 따름이다.

우리가 막힌 길을 뚫고 나가려면 우선 모두가 사람답게 살려고 애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철학하는 사람의 태도다.

괴테가 "철학이란 상식을 어려운 말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처럼 철학이란 특정인만이 할수 있는 별난 것이 아니다.

올해는 온 국민이 철학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진정한 철학에 의해서만 세계도, 국가도, 개인도 정의에 도달할수 있겠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