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한-러친선협회 부회장>

싱가포르공항에 도착, 청사에 들어서면 눈에 띄도록 큰 글자로 적혀있는
경고문을 볼 수 있다.

즉 마약을 밀매하거나, 쓰거나,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적발될 경우 오직
한가지 처벌, 곧 사형이다 는 글귀이다.

마약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오싹함이 느껴지는 경고문이다.

죽는 벌 밖에 없는데 이 마약밀매를 할 사람이 없을테니 자연히
싱가포르에서는 인간과 사회를 파멸시키는 마약이 문제가 될 턱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마약처럼 무서운 사회적 병원이 있다면 각급학교에서의
촌지수수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 꼴을 보고, 혹은 짐작을 해가면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사람이 커서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오로지 돈만이 자신의 추구목표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부모가 여유가 있어서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선생님한테 돈을 갖다준
아이는 좋은 자리에 앉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감투도 쓰고 우수.모범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집이 가난한 아이는 제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좋아도
선생님한테 핀잔받기 일쑤이고, 여기저기 밀려나다가 급기야 불량학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어려서부터 사회에 대한 적개심 내지는 복수심에 불타는
학생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비록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다녀도, 생각할 수 있는
한계가 오로지 돈을 써서 출세의 길을 모색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다행히 범죄의 소굴에 들어가는 악운을 모면, 똑같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면,어떻게 해서라도 돈에 대한
한을 풀기위해서 몸부림치듯이, 열심히 혹은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오직
돈만을 벌기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요즘 대학교수가 되려고 해도 돈을 안쓰고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니
상아탑이란 말은 이제 황금탑 이라고 그말을 바꾸어야 할 세상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 고
우겨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나라를 망치고 있는 대형 부정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그것도
주범들이 하나 둘씩 대부분 사면되거나 보석되고 있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의 법조계의 판단은 어떠한 교육환경과 풍토에서 비롯된
것일까.

연구와 노력에 최대의 비중을 기울여서 기업을 운영해야되는 것이 상식인데
줄 잘잡고, 관과의 유대관계 좋은 사람들이 작은 노력으로 떼돈을 버는
경우가 허다한 요지경같은 풍토이다.

이 모든 현상의 가장 분명한 원인은 초등학교때부터의 학부모와
선생님들간의 촌지수수라고 주장한다면 그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이 세계 대체 어느나라에서 이런 경우가 있겠는가.

부정부패의 정도가 우리나라와 유사한 나라들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류 선진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아니 상상할 수도 없는 현상이다.

이러한 해악이 정부에 만연하고 사회 각분야에 넓게 오염되어 있다면
이것이 마약과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이 범죄를 행하는 양쪽 당사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
제정된다면 부정부패가 격감될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