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어제 아침 회동, 9.18사건 이후의 안보사태를
논의하고나서 초당적 대처에 한 목소리를 냈다.

정당정치 체제에서 여-야의 통일관이나 대북 정책방향이 언제나
똑 같기를 기대한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다.

그러나 북의 위협이 현실로 나타난 시점에도 여-야가 따로 놀고
국론이 분열돼선 안된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욕심이 있다면 이것이 대립만을 능사로 삼다가 실추된 한국정치의
대국민 신뢰회복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같은날 영수회담에 이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1차공판이
열렸고 오후엔 강원도주최 전국체전이 별 차질없이 개막되었다.

혹 대공비작전이 체전을 못 열게 하지 않을까 우려가 없지 않았던만큼
대소사의 궤도운행이 불안한 국민정서 진정에 도움이 되리란 마음이
든다.

물론 공비26명중 아직 3명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최덕근영사 피살사건 수사가 장기화기미를 보이는 속에 북한이
불쑥 간첩혐의 미국인 체포를 발표하는 등, 거듭된 북의 보복협박 진의를
짐작케 하는 사태도 연발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북측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주시 분석하는 일은 계속하되
그 하나하나에 현혹돼 일희일비함은 바로 저들이 파논 함정에 부지불식중
빠지는 소행이란 사실이다.

잠수함 침투를 포함, 백배 천배 보복협박이란 대남전략의 노리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방황을 가속화하는 남한사회에 전쟁공포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 효과는 중첩적이다.

특히 청년층을 반전 패배주의에 물들게 하며 강경보수 반북세력은
거기서 이간고립된다.

그것이 북의 중간목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과소평가는
더욱 금물이라는 인식이다.

다시 말해 상대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위에 자신을 정확히
아는 지피지기야 말로 만고불면의 백전백승 병법임을 되새겨야 한다.

북한이 쉽게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최근 귀순 현성일 전북한
외교관의 증언(본지 7일자 6면), 그와 공통점이 큰 국내 전문가들의
지적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서방세계 이론가들의 견해에 비해
북한에 관해 경험적 지식을 가진 이들의 견해 사이엔 괴리가 크다.

그 근본원인은 분명하다.

북한사회란 인간 상식대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라는 점 하나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상식을 토대로 분석하는 구미인들의
사고로는 저런 반상식적 조직은 곧 붕괴한다는 것이 유일한 결론이다.

하나 그런 오랜 모순속에 저만큼 지탱해 온것을 몸소 체험한 사람에겐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추리가 자연스럽지 곧 망하리란 예단은 오히려
부당할 밖에 없다.

이 상반된 견해에 어떤 편을 들기도 실은 어렵다.

그러나 설득력으로 볼때 이론보다는 실제 쪽이 더 미덥다.

한때 쿠바 리비아, 걸프전서 대패한 이라크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끄떡 없다.

또 독일통일은 갑자기 왔으되 여러면에서 특수했다.

한반도 통일은 조급할수록 멀어지기 쉽다.

북한을 너무 겁내도, 얕봐도 손해 본다.

정파적 이해를 떠나 길게 대비하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