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어디서 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옛 책을 뒤적이다 읽었는지, 여행중에 읽었는지, 누각의 편액에서 읽었는지
까마득하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순간 필자는 글 속에 담긴 깊은 뜻에 숙연해졌다.

그리고 이것은 필시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지사가 썼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우후악이란 곧 "앞서 근심하는 자가 후에 즐거워 하고, 앞서 즐거워 하는
자는 후에 근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평이 들려온다.

이제 겨우 국민소득 1만달러의 길에 들어섰는데도 소득과 지출의 불균형
으로 소비수준만 높아져서 대외적인 부채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도시와 농촌간의 균형 잡힌 분배도 이뤄지지 않아 이농현상을
부추기고 계층간의 갈등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특히 젊은이들의 3D기피 현상으로 노동인력이 절대로 부족한데도 무직자가
많으며 급기야는 외국인까지 데려오는 현실이다.

속담에 "젊을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젊은이들이 고된
일을 마다하고 노는데만 열중한다면 이 나라를 누가 어깨에 메고 전진할
것인가.

필자가 젊었을 때는 전쟁직후의 폐허에서 가난 때문에 몹시 고생한 기억이
있다.

그 때는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사는 것도 힘겨웠다.

그런 절대적 빈곤은 70년대 이후 경제개발의 성공으로 서서히 벗어났지만
오늘같은 풍요(?)의 시대에도 의식 속에 깊이 낙인 찍혀 있다.

즉 검소하게 살아가자는 마음가짐이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눈 앞에 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라 말하기도 하고 국제화 정보화의 시대라 말하기도 한다.

어떻든 우리가 이 힘겨운 고비를 넘어서서 경제와 문화의 번영을 누리려면
국민모두가 선우후악의 정신을 체득해야 하리라 믿는다.

특히 패기넘치는 기상을 지닌 씩씩한 젊은이들에게 기대를 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