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 고개에는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었고
신호등도 없었습니다.

10여넌전 이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시민을 다치게하는 사고를 냈고
허술하게 마련된 교통시설이 교통정체를 심화시킬 뿐만아니라 사고를
유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서울시가 지난 3월 한달동안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교통관련 개선사항을
공모했을 때 무려 67건의 개선안을 제출한 개인택시 운전기사 권기오씨
(관악구 신림7동.43)는 이같은 이유로 교통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흑석동 사고이후 택시운전을 하다 느낀 개선방안을 교통경찰이나
교통관련 공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위에서 정한
것이어서 우리가 건의해봐야 소용없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스스로 비망록을 작성해 체계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권씨는 92년부터 94년까지 택시기사로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무려
6백여건의 개선사항을 비망록으로 기록, 서울시 등에 제출했고 이같은
공로로 "새서울시민상", "정도6백년 자랑스런 시민상" 등을 받기도 했다.

"낮에 택시운전을 하다 도로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기록하기 위해
정차하고 있을 때 장기정차를 했다고 5일간 운행정지를 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는지 의심이 들 때가 많았지만
언젠가는 반영될 것이란 생각에 계속해서 비망록을 작성했습니다"

권씨가 이처럼 꼼꼼히 마련한 개선안 가운데 이미 2백15건은 정책에
반영돼 개선됐다.

이에 힘입어 권씨는 지난 2월동안 관악구 전역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
이번에 서울시에 제출한 것이다.

앞으로도 권씨는 서울시내 모든 구청에 대해 개선방안을 마련해나갈
계획으로 있다.

"교통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이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있는 저희들의
의견에 좀 더 많은 관심을 쏟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일반시민들도 가능하면 승용차이용을 자제하는 미덕을 발휘해준다면
교통혼잡은 크게 개선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권씨는 비번인 날에는 항상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 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