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에 이어 내부거래 실사의 강화로 경색되어 가던 정부.
기업간 관계가 김영삼 대통령의 유럽순방이후 상호협력체제로 선회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정부의 대 재벌정책 방향전환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상위
10대 재벌중 삼성 현대 LG 대우 그룹에 이어 한화그룹등이 속사정이야
어떻든 차례차례 그룹 구조개편을 발표하고 있고, 선경그룹에 이어 현대,
대우 그룹으로 내부거래 실사가 예정된 시점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얼마전 승용차 사업을 발표하면서 2000년에 삼성자동차(가칭)를
국민기업화시킬 것이라 선언하였다.

LG그룹 또한 계열사의 기업공개, 증자확대를 통해 현재 39%의 평균내부
지분율(대주주개인지분 5%, 법인지분 34%)을 1999년 말에 가서는 19.5%
(대주주개인지분 3%, 법인지분 16.5%)로 축소시키는 획기적인 소유분산
계획을 발표하였다.

계열사의 대대적 축소와 중앙집중의 서단식 그룹경영체제에서 분권적인
소그룹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소유분산계획까지 자세히 발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 기업집단이 경쟁환경변화에 따라 자발적으로 계열사를 축소하는
것인가?

소그룹체제로의 전환 또한 내부적 경제유인이 있어서 하는 것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작년에 마련된 공정거래법 개정시안의
내용을 잠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의 주요 초점은 소유분산 유도와 출자총액한도
인하를 통한 계열사간 자금연결고리를 줄여 나가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개정안은 출자총액의 예외범위와 정책목표를 연결시킴으로써 간접적
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

소유분산이 잘된 기업의 출자,비주력계열사의 주력기업으로의 출자,
S.O.C 민자유치사업에 대한 출자의 예외인정을 통해 소유분산, 업종전문화,
S.O.C 민자유치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말해 재벌정책의 초점이 과거 여신규제, 독과점시장에서의 가격규제
에서 적극적인 소유분산유도, 서단식 그룹경영체제의 개선으로 전환된
것이다.

따라서 기업입장에서는 정부의 정책방향이 정해진 이상 서둘러 구조개편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집단의 사업범위가 확대되고, 경쟁환경이 점차 격화되면서 기업집단
스스로 내부구조를 전환시키려는 유인이 증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기업집단의 구조변화가 계열사의 축소와 내부경제적 유인에 의해서
가 아니라 정부의 직간접적 압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면 이러한 정책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볼수 있다.

우리는 과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특단의 재벌정책이 마련되었고,
이에 따라 각 재벌들이 계열사를 대대적으로 축소시킨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가서는 어떠한 이유에서던간에 기업집단의 계열사는
다시 증가되어온 사실 또한 기억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재벌들의 구조개편이나 계열사 축소계획도 이러한
측면에서 볼때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각 기업집단은 각기 다른 성장과정을 겪어왔고, 전문화.다각화정도,
경영권의 하부이야 정도 또한 각기 다를수 밖에 없다.

이러한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소유.경영분리, 서단식 경영
체제의 해체 등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할뿐 아니라 기대하는 정책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서 우리를 혼동시키는 것은 소위 경제력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과연 어디까지 정책적으로 개입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유효한 정책개입
수단을 확보할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부의 재벌정책의 기조가 자주 변하는 것은 기업의 정책적 환경의 가변성
만을 높일뿐 국민경제에 하등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이제 세계화를 추진함에 있어 재벌정책의 방향을 새로이 정해야
한다.

경제력집중의 제문제점중 정책적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정책목표의
합목적성을 높이고 제정책수단의 상충을 최대한 즐여나가면서 기업에게
합리적인 변화방향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향후 기업집단정책의 방향과 주요 목표의 우선순위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개방의 확대와 경쟁제한적 정책규제의 정비를 통한 시장에서의
경쟁압력 제고에 정책의 우선순위가 두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금융시장 개방과 금유자율화의 정착으로 금리의 가격기능 회복을
통해 여신편중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금융실명제의 보완을 통해 상속및 증여세제.세정의 개선, 자본시장 개방과
직접금융시장의 활성화 등이 이루어지는 경우 대규모기업집단의 효율성을
제약할수 있는 출자규제를 지속하지 않더라도 소유집중은 완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소유집중이 완화되는 이후에는 소유와 경영의 미분리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수 있으리라 본다.

나아가 시장개방의 가속화와 경쟁체제의 구축이 이루어진 환경하에서는
업종전문화를 추구할 것인지 업종다각화를 추구할 것인지의 문제는 기업
스스로가 해결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룹식 경영체제의 문제는 인위적인 기업구조의 개편보다는 연결재무제표의
조기시행과 내부거래 관행의 정비등 그룹식 경영체제에 따른 문제점 보완에
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