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주가지수선물거래가 도입된 것은 1988년이었다.

85년 채권표준물을 대상으로 채권선물거래가 도입된 이후 주가지수선물및
증권옵션거래 도입관련 논의가 활발히 제기되면서 증권거래법및 주가지수
선물거래제도가 구체화됐다.

당시 주가지수선물거래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은행과 증권업계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은행쪽에서는 금융 통화등 협의의 금융선물과 증권선물을 일괄하는 종합
금융시장의 필요성을 주장한 반면 증권업계는 현물시장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가지수선물거래를 증권거래소에서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물시장의 기능은 현물시장의 보완에 있다며 현물과 함께 적절한 규제가
이뤄질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증권업계의 주장이 증권선물옵션
시장의 분리를 가져왔다.

일본에서는 오사카증권거래소가 닛케이225와 닛케이300,도쿄증권거래소가
토피스선물 옵션을 각각 상장하고 있다.

증권거래의 대부분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선물거래는 주로
닛케이225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경제의 중심인 도쿄를 당할수 없었던 오사카가 지수선물도입을 만회의
계기로 삼기위해 80년대들어 선물거래연구를 활성화시켰다.

특히 오사카인들은 이지역에서 쌀 금 은등의 상품선물이 거래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사카는 상품이 되는 지수를 결정하는데 도쿄지수를 사용할수 없어 일본
경제신문의 지수인 닛케이225를 활용키로 결정했다.

닛케이지수가 토피스보다 오래됐고 지명도도 높다고 판단했다.

상장후 도쿄와 오사카중 어느쪽이 중심이 될지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나
이로인해 오사카가 선물거래의 중심무대로 떠올랐다.

그러나 주가지수선물상장후 1년을 경과하여 선물거래가 급증하기 시작할
무렵 90년의 주가폭락을 맞게 되자 주가지수선물이 주가폭락의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이 나왔고 선물거래는 급속히 위축됐다.

경제정세나 뉴스등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가격이 움직이는 선물시장이 현물
시장의 투자자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에서 증권시장혼란의
원흉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다운 반응이었다.

특히 닛케이225는 단순평균방식이어서 의도적으로 지수를 변동시키는 조작
이 이뤄지기 쉽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정부는 이후 시장조성을 위해 위탁증거금률및 거래증거금률의 인상, 거래
시간의 단축등 보완조치를 취했으나 거래가 더욱 감소하는등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따라 일본 대장성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충실한 공시 <>공정
하고 타당한 거래규정의 확립 <>적정한 시장관리운용등의 개선책을 강구하고
오사카증권거래소는 가중평균방식의 신지수 닛케이300을 도입했다.

어찌됐건 여러형태의 시장착오를 경험한 일본 증권계는 현물과 선물을
일률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는 충분치않고 현물시장도 아울러 정비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선물시장도입시 하나의 상품으로 출발했어야 하고 복수지수및 시장이
필요할 경우 그때그때 보완하는게 좋지 않았나 하는 평가가 요즘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이익원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