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현 < 과학기술부장 >

생동감이 넘쳐야할 대덕연구단지가 매우 지쳐있는 것 같다.

"한국과학기술의 메카"라 부를수 있는 이곳에서 근래에 들려오는 소식중에
반가운게 별로 없다.

연구동에 밤새 불이 켜져있는 모습은 이젠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연구성과가 나왔다는 소식도 들은지 오래다.

대신 들려오는 것은 서글픈 소식뿐이다.

연구원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가족과 함께 연구소 뜰에 모였다는 얘기가
있더니 박사급 중견 고급두뇌들이 올들어서만도 200명넘게 단지를 떠났다는
것이다.

어려운 공부를 하고 "연구"가 좋아 모였던 고급과학기술 두뇌들이 대학과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다.

처우가 나쁘기 때문에 연구소를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공계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보수가 기업등에 비해 크게 뒤진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됐다.

연구에 싫증을 느껴 마음을 바꾼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연구과제와의 싸움은 고통스럽고 어찌보면 고독한 일인지 모른다.

젊었을때 의욕과 야망을 갖고 연구에 몰두하지만 나이가 들면 힘에 버겁고
좀더 편한 길을 선택하고픈 생각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대학강단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개중에는 커가는 자녀의 교육문제때문에 일자리를 바꾼 사람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인력이 단지를 떠나는 것이라면 그다지 크게 걱정할
사안이 아니다.

원인이 분명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대책을 만들어 시행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최근 몇달사이에 다시 발생하고 있는 연구원의 "탈대덕"현상은
이유가 다른데 있다.

과학기술행정에 대한 불신이 쌓여있는 가운데 출연 연구기관 혁신이라는
정부당국의 회오리바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단지의 연구원들에게 물으면 열의 아홉은 "정부가 연구기관을 너무 자주
뒤흔든다"고 불만이다.

불안한 위상과 간섭받는 풍토에서 창조력이 발휘될수 없음은 자연스런
이치다.

때문에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다"는게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5공시절에 각부처산하에 있던 많은 연구기관을 홍릉과 대덕단지에
모아놨다.

그리고 주무부처를 과기처로 했다.

물리적통합은 초기에 진통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는듯
했다.

그런데 어쩐 이유에서인지 출연연구소의 운영효율화라는 정부시책이 자주
나오면서 대덕연구단지는 기능재정립과 기관평가등으로 매년 시달리기 시작
했다.

90년대들어서 단지의 연구활동을 크게 감퇴시킨 시책이 밥먹듯이 나왔다.

91년 4월 국무총리실과 과기처가 이공계 정부출연 연구소 평가및 기능
재정립작업을 시도한 이래 심심하면 활성화방안, 일류화방안, 전문화계획
등을 각각 수립해 발표하고 기관평가를 해댔다.

하루도 잡념없이 연구에 몰두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들쑤시지 말라"는 연구현장의 외침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정책당국의 시각은 다른것 같다.

설립연한이 오래된 연구기관의 경우 연구원의 노령화에 따른 생산성저하
현상이 심각하고 출연연구소별로 업무영역이 불분명해 중복현상이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연구생산성을 높이고 운영의 효울화를 기하기위해 연구기관들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전혀 외면할수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1년에 한두차례씩 출연연구기관의 운영방침이 변하고 연례행사
같이 기관평가가 계속된다면 결코 바람직한 것은 못된다.

혹자는 연구원들에 대한 처우때문에 불평이 많다는 얘기들도 한다.

이 또한 틀리지않는 얘기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연구분위기이다.

최근 "톱쿼크"확인에 성공한 미 페르미연구소는 이의 연구를 위해 900명의
연구원을 두패로 나누어 30년동안 몰두하게 했다한다.

톱쿼크 발견소식을 듣고 미에너지부장관(H.R.O Leany)이 한말이 마음에
든다.

"이번 톱쿼크의 발견으로 기초과학연구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력히 입증됐다"

페르미 연구소는 미 대학연구연합회(URAI)가 에너지부와 계약, 운영되는
정부출연 연구소이다.

지난60년대 한국과학기술원(KIST)을 만들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몇년간 간섭보다 지원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리하여 의욕있는 젊은 연구원들이 모여들고 활력이 되살아 나게한 연후에
채찍을 들어도 늦지 않다.

홍릉과 대덕단지가 기력이 아주 쇠해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