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재경원장관의 "한은법개정"발표기사를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수년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한은독립논쟁이 마무리되고 대통령의
공약사항이 지켜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계속 추진되어온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등 일련의 조치와
맥을 같이하는 세번째의 경제개혁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돈관리가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물가안정을 목표로하는 독립된 기관
에서 관장하게 된다니.. 그런데 이번에는 그동안의 두차례에 걸친
경제개혁조치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전에는 모든 사람이 계층,활동분야를 가릴것 없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는데
이번에는 이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많았다.

학계 야당뿐만 아니라 독립의 염원을 이루게된 한은조차도 비상총회를
개최한다느니 전직원 사표를 제출한다느니 야단법석이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도대체 각계에서 그처럼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재경원 발표내용을 다시 한번 꼼꼼히 뜯어 보았다.

역시 반발이 거센 이유가 있었다.

한은총재가 통화금융정책의 의사결정기구인 금통위 의장을 맏는다는
배후에는 결국 재경원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총재를 임명하고 금통위원
9인도 결국 전원 재경원이 임명하는 것과 다름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은행감독기능까지 재경원에 흡수하여 재경원장관은 이제 경제에
관한한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명실상부한 경제대통령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물론 은행감독기능이 정부의 권한이 되어야 옳은지 중앙은행의 고유권한
인지 잘 알수는 없으나 그렇지 않아도 정부조직개편으로 거대해질대로
거대해진 재경원에서 이것까지 맡게 된다면 조직내부에 부조리와 부당함이
만연해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수 있단 말인가.

머리는 작고 몸집만 거대해진 공룡이 결국은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멸종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두려움이 든다.

게다가 더욱 의아한 것은 조금만 유심히 보면 뭔가 이면에 한은독립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배치되는 정책이 들어있는듯한데 그동안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온몸을 아끼지 않았던 대통령께서 이를 승인하였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통령께 모든것이 제대로 보고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한은법 개정안이 온 국민이 공감하고 수용가능한
수준에서 잘 마무리 되어 우리경제가 선진적으로 운용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재희 <서울 서초구 잠원동58-24 한신11차아파트323-410>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