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속에는 부처가 들어있고 자식 속에는 앙칼이 들어있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는 거의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은 불효할 따름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처럼 본능만 가지고 사는 조재가 아니다.

부모나 자식이나 본능을 뛰어넘어 각기 "생명의 근원"을 자각하고 서로
사랑하며 감사할줄 아는 지성을 가지고 사는 존재다.

부모의 참된 자애나 자식의 효도라는 것도 그런 깊숙한 내면의 자각에서
나오게 된다.

조선조 세조때 고양현에 송인례 송유례라는 형제가 살았다.

형인 인례는 불효자로 인근에 소문나 있었으며 아우와는 늘 사움이
그치지 않았다.

아우와 함께 살던 80세의 노모가 일군을 고용해 밭에 김을 매면 그는
일꾼들을 몰아다가 제밭을 매게하고 곡식이 여물면 한톨도 남기지 않고
빼앗아 갔다.

노모가 이같은 정상을 관아에 알리겠다고 하면 "늙어서 자긱을 잡아
먹으려느냐"고 도리어 윽박질렀다.

노모는 생각끝에 결단을 내려 아들의 불효를 글로 써서 관아에 고발,
법에 의해 최죄해줄 것을 청원했다.

그가 옥에 갇힌지 4년이 지나자 이 일은 왕에게까지 알려졌다.

세조는 노모를 불러들여 아들을 살릴것인가 죽일것인가를 다르쳤다.

그러나 노모는 자식이 저지른 일을 폭로하면서 조금도 용서하려 들지
않았다.

세조는 그를 사지를 찢어죽이는 형에 처해 버렸다.

그에게는 첩의 소생인 딸이 하나 있었는데 효성이 지극해 옷가지까지
팔아 옥에 있는 아비를 극진히 봉양했고 할머니가 대궐에 가서 아비의
악독함을 폭로하자 "할머니 기역이 소생을 죽이시겠습니까"하며
울부짖었다.

아비가 처형되자 시신을 맞추어 옷으로 씻어내고 3일장을 치렀는데
보는 이마다 슬퍼하지 않는자가 없었다고 한다.

"세조실록"에 이 사건을 무슨이유에서 이렇게 소상하게 기록해
놓았는지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아마 사관은 불효자인 아들과 효녀인
그의 딸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실어 후세에 경계로 삼으려 했던듯 싶다.

병고에 시달리며 단 둘이 살던 노부부가 동반자살을 하고 젊은 어머니가
아들이 공부를 안한다고 아들앞에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실직한뒤 자식의 구박에 못이겨 자살한 50대 아버지도 있다.

부모를 이지경에 이르게한 자식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어떤 경우든 자살은 결코 미화될수 없다.

500여년전 80살 먹은 노파보다도 못한 정신적 무력감에서 현대의 노인
들을 건져내줄 가정과 사회의 처방이 시급하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