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길 <외교안보연구원 원장>

윈스턴 처칠경은 제2차 세계대전후 철의 장막이 굳게 내려진 소련을 "신비
로 둘러싸인 수수께끼중의 수수께끼"(a riddle in an enigma wrapped up in
mystery)라고 부른적이 있다. 1948년이래 김일성의 북한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가부장적 1인체제로 경영되어왔고,그 통치과정의 폐쇄성 또한 구소련
을 능가하고 있으므로 북한의 장래에 대한 예측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추측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체제의 등장
이 거의 확실시되는 이 시점에서 한반도의 장래를 보다 긍정적인 면으로
이끌어 가기위하여 김정일체제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이러한 방향의 제시는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 주민의 복지증진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마련하려는 바람에서이다.

김정일은 20여년동안 아버지의 후견하에 후계자 수련을 했다고 하나
갑작스러운 김일성의 사망이 남긴 엄청난 유산의 멍에를 짊어지게 되어
체제의 존망을 건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출발점에 서있다. 김정일은 과거
반세기동안 북한주석 김일성이 추구해온 이념적 정책노선을 답습하려는
충동을 느낄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체제가 당면한 안팎의 시련과 도전은
김일성노선의 단순한 답습으로는 결코 해결될수 없다. 특히 김정일체제가
과거 노선을 답습하는 경우 위기가 가중되어 북한의 장래는 지극히
불투명해질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체제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또한
남북한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서도 구각을 탈피하여 핵문제 경제문제
대남정책분야 등에서 대담한 정책전환을 시도해 나가야 할것이다.

김일성이 사망전에 약속한 핵활동동결 용의및 남북한 정상회담등이 그의
과거 반세기에 걸친 대결정책전환의 효시인지,또는 국제적 제재에 직면한
위기상황속에서 단순한 전술적후퇴만을 기도한 것인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것이나,그를 계승한 김정일체제는 김일성이 만들어놓은 이 대화국면을
정책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북한 3단계회담이 재개될 경우
북한이 핵문제에 대하여 취할 태도는 김정일체제가 계속해서 전 국제사회를
상대로 대결정책을 계속하느냐 또는 이성적인 정책으로 궤도수정을 시작
하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것이다. 따라서 김정일 체제가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하고 국제적고립을 탈피하기위해서 택해야 할 길은
대결이 아니고 화해의 길이다.

김정일체제가 직면한 또 하나의 도전은 날로 심각해져 가는 경제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신지도체제가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와 경직된
"명령경제"를 무모하게 계속한다면 북한이 당면한 식량 에너지및 외화위기
를 해결할수 없음은 물론 북한주민의 최소한의 경제적 욕구마저 충족시킬
수 없게되어 체제의 위기는 가중될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 정책전환
이 갖고 올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가들과의 경제협력및 관계정상화,한반도의
평화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등을 고려할때 김정일체제가 택해야 할 길은 더욱
자명해진다. 그러나 김정일체제가 대결정책을 고수하면서 제한적으로 중국식
개방을 시도하여 경제를 일시적으로 소생시킨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제기
하는 자기모순으로 인해 또 다른 정치적 위협의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김정일은 북한사회를 서서히 개방하면서 남북한 관계의
현실을 인정하고 대결 보다는 남북한의 공존 공영정책을 취해 나가야 할 것
이다. 만약 김정일체제가 대담한 방향전환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현재까지
대두되고 있는 부정적인 시나리오와는 달리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북한의
변화가 북한의 안정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49년동안 북한을 지배해온 김일성체제는 그의 아들인 김정일에
의하여 승계되고 있지만 김일성의 사망은 장기적으로 한반도에 엄청난
변화를 갖고 올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승계과정이나 김일성사후의 사태
발전에 비추어 볼때 김정일체제는 일단 출범할 것으로 보이나 그가 추구할
정책의 방향이나 북한체제의 진로는 불확실성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일성의 사망으로 필연적으로 시작
될수 밖에 없는 북한의 변화를 슬기롭게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그것이 제기하는 도전을 기회로 전환할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김일성사망후 남북한관계를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하여 진전시키고,이미 합의한 정상회담의 원칙은 준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전향적이고 신축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평가될수 있다. 또한 북한이
25일로 예정되었던 남북한 정상회담을 두고 "취소"대신 "연기가 불가피하다"
고 설명한 것은 일단 그의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유를 남기고 있다.

우리는 반세기에 걸친 북한의 대결정책이 갖고온 북한의 국제적 고립과
심각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북한주민에 대해 같은 민족으로 동정과 함께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이제 김일성의 사망이 갖고올 북한의
변화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기회가 될수 있도록 북한을
개방과 개혁으로 유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북한에서
현재 모든 권력이 다시 한사람의 손에 집중되는 일인체제가 재현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새로운 지도체제로의 전환이 질서있게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한편 김정일체제가 최근 조성된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
남북한의 공존공영와 핵문제해결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김정일체제가 새로운 출발을 계기로 낡은 이념보다
경제적 실리를,대결보다 화해를,특히 전쟁보다 평화를 택하는 대전환을
시도하기를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