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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위
    강성위
    The Lif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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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자는 백안(伯安), 호는 태헌(太獻)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연구박사, 서울대학교 중국어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조그마한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저술 활동을 하며 한시(漢詩) 창작과 번역을 지도하는 한편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출강하여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30여 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창작 한시집으로 ≪술다리[酒橋]≫ 등이 있다.
    • 단풍, 복효근

      단풍   복효근   저 길도 없는 숲으로 남녀 여남 들어간 뒤 산은 뜨거워 못 견디겠는 것이다   골짜기 물에 실려 불꽃은 떠내려 오고 불티는 날리고   안 봐도 안다 불 붙은 것이다 산은,   【태헌의 한역】 丹楓(단풍)   彼處無蹊深林內(피처무혜심림내) 男女十餘人入後(남녀십여인입후) 山知太熱不堪耐(산지태열불감내)   火花泛水火星飜(화화범수화성번) 自不送目亦可知(자불송목역가지) 山卽當今正火燃(산즉당금정화연)   【주석】 * 丹楓(단풍) : 단풍. 彼處(피처) : 저기, 저곳. / 無蹊(무혜) : 길이 없다. / 深林內(심림내) : 깊은 숲 속. 男女(남녀) : 남자와 여자. / 十餘人(십여인) : 10여 명. / 入後(입후) : 들어간 후. 山知(산지) : 산은 ~을 알다. / 太熱(태열) : 너무 뜨겁다. / 不堪耐(불감내) : 견딜 수 없다, 견디지 못하다. 火花(화화) : 불꽃. / 泛水(범수) : 물에 뜨다. / 火星(화성) : 불티. / 飜(번) : 날다. 自(자) : 스스로, 직접. / 不送目(불송목) : 눈길을 보내지 않다, 보지 않다. / 亦(역) : 또, 또한. / 可知(가지) : 알 수 있다. 山卽(산즉) : 산은 곧 ~이다. / 當今(당금) : 지금. / 正火燃(정화연) : 막 불이 붙다, 한창 불이 타다.   【직역】 단풍   저기 길도 없는 깊은 숲 속으로 남녀 십여 명이 들어간 뒤에 산은 알았다, 너무 뜨거워 못 견딘다는 걸   불꽃은 물에 뜨고 불티는 날리니 직접 눈길 안 주고도 알 수 있는 것, 산은 이제 한창 불이 붙은 것이다   【漢譯 노트】 19금 계열의 시(詩)인 복효근 시인의 이 <단풍>은, 단풍을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에 비유한 고두현 시인의 <내장산 단풍>이나 무지개의 피에 비유한 김태인

      2019-10-29 13:39
    • 나 하나 꽃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태헌의 한역(漢譯)】 吾獨開(오독개)   勿謂吾獨開(물위오독개) 草田何改變(초전하개변) 汝開吾亦開(여개오역개) 終竟草田爲花田(종경초전위화전)   勿謂吾獨染(물위오독염) 一山何變轉(일산하변전) 吾染汝亦染(오염여역염) 終竟萬山若火燃(종경만산약화연)   【주석】 * 吾獨開(오독개) : 나 홀로 꽃피다. ‘開’는 단독으로 쓰여도 꽃이 핀다는 뜻이 있는 한자이다. 勿謂(물위) : ~라고 말하지 말라. 草田(초전) : 풀밭. / 何改變(하개변) : 어찌 바뀌겠는가,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汝開(여개) : 네가 꽃피다. / 亦(역) : 또, 또한. 終竟(종경) : 마침내, 결국. / 爲花田(위화전) : 꽃밭이 되다. 吾獨染(오독염) : 나 홀로 물들다. 一山(일산) : 하나의 산, 산 하나. / 何變轉(하변전) : 어찌 바뀌겠는가,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汝亦染(여역염) : 너 또한 물들다. 萬山(만산) : 수많은 산, 온 산. / 若火燃(약화연) : 불타는 것과 같다, 불처럼 타다.   【직역】 나 홀로 꽃피어   말하지 말아라, 나 홀로 꽃피어 풀밭이 뭐 달라지겠냐고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꽃밭이 되느니   말하지 말아라, 나 홀로 물들어 산 하나가 뭐 달라지겠냐고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불처럼 타리니   【漢譯 노트】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뀌지만, 내가 바뀌지 않으

      2019-10-22 09:23
    • 집에 못 가다, 정희성

      집에 못 가다   정희성   어린 시절 나는 머리가 펄펄 끓어도 애들이 나 없이 저희들끼리만 공부할까봐 결석을 못했다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 여자가 어머 저는 애들이 저만 빼놓고 재미있게 놀까봐 결석을 못했는데요 하고 깔깔댄다 늙어 별 볼일 없는 나는 요즘 그 집에 가서 자주 술을 마시는데 나 없는 사이에 친구들이 내 욕할까봐 일찍 집에도 못 간다   【태헌의 한역(漢譯)】 不歸家(불귀가)   幼年時節有頭熱(유년시절유두열) 沸如湯水不缺席(비여탕수불결석) 但恐朋友除吾練(단공붕우제오련) 酒樓主媼聽所歷(주루주온청소력) 笑曰余亦無缺課(소왈여역무결과) 只恐朋友外余樂(지공붕우외여락) 老去無事多閑日(노거무사다한일) 吾人頻尋此酒樓(오인빈심차주루) 近來躊躇不歸家(근래주저불귀가) 唯恐朋友暗罵吾(유공붕우암매오)   【주석】 * 不歸家(불귀가) : 집에 돌아가지 못하다, 집에 못 가다. 幼年時節(유년시절) : 유년 시절, 어린 시절. / 有頭熱(유두열) : 머리(에) 열이 있다. 沸如(비여) : ~처럼 끓다. / 湯水(탕수) : 뜨거운 물. / 不缺席(불결석) : 결석하지 않다. 但恐(단공) : 다만 ~을 걱정하다. / 朋友(붕우) : 친구, 친구들. / 除吾練(제오련) : 나를 제외하고 ~을 익히다, 나를 빼고 공부하다. 酒樓(주루) : 술집. /主媼(주온) : 주인 여자, 여주인(女主人). / 聽所歷(청소력) : 겪은 바를 듣다, 겪은 일을 듣다. 笑曰(소왈) : 웃으면서 ~라고 말하다. / 余(여) : 나. / 亦(역) : 또, 또한. / 無缺課(무결과) : 결석이 없다, 결석하지 않다. 只恐(지공) : 다만 ~을 걱정하다. / 外余樂(외여락) : 나를 제외하고 ~을 즐기다, 나를 빼고 놀다. 老去(노거) : 늙어가다. / 無

      2019-10-15 09:35
    • 또 다른 사랑, 곽재구

      또 다른 사랑   곽재구   보다 자유스러워지기 위하여 꽃이 피고   보다 자유스러워지기 위하여 밥을 먹는다   함께 살아갈 사람들 세상 가득한데 또 다른 무슨 사랑이 필요 있으리 문득 별 하나 뽑아 하늘에 던지면 쨍 하고 가을이 운다   【태헌의 한역(漢譯)】 別外情人(별외정인)   愈得自由花開綻(유득자유화개탄) 愈得自由人食飯(유득자유인식반) 相與居人盈四垠(상여거인영사은) 何須別外有情人(하수별외유정인) 忽拔一星投靑冥(홀발일성투청명) 作音響亮素秋鳴(작음향량소추명)   【주석】 * 別外(별외) : 따로, 별도의. / 情人(정인) : 사랑하는 사람, 사랑. 愈得自由(유득자유) : 더욱 자유를 얻다, 더욱 자유스럽게 되다. / 花開綻(화개탄) : 꽃이 피어나다. 人食飯(인식반) : 사람이 밥을 먹다. 相與(상여) : 서로 더불어, 함께. / 居人(거인) : 사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 / 盈(영) : 가득하다, 가득 차다. / 四垠(사은) : 사방의 경계, 온 세상. 何須(하수) : 어찌 반드시 ~, 어찌 꼭 ~. 忽(홀) : 문득. / 拔(발) : ~을 뽑다, ~을 빼다. / 一星(일성) : 하나의 별, 별 하나. / 投(투) : 던지다. / 靑冥(청명) : 짙푸르고 아득한 곳, 푸른 하늘. 作音(작음) : 소리를 내다. / 響亮(향량) : 소리가 맑고 낭랑하다. 쨍, 쨍그랑. / 素秋(소추) : 가을. 오행설(五行說)에서, 가을이 금(金)에 속하고 색은 흰색이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 鳴(명) : 울다.   【직역】 별도의 사랑   더욱 자유롭고자 꽃은 피고 더욱 자유롭고자 사람은 밥을 먹는다 함께 살아갈 사람들 세상에 가득한데 어찌 따로 사랑이 있어야 하랴! 문득 별 하나 뽑아 하늘에 던지면 쨍 소리를 내며 가을이 운

      2019-10-08 13:20
    •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태헌의 한역(漢譯)】 欲食素麪(욕식소면)   常曰人生世間事(상왈인생세간사) 誠如米飯毫無倦(성여미반호무권) 時時破舊飯館裏(시시파구반관리) 欲食老媼煮素麪(욕식로온자소면)   心傷人生轉角處(심상인생전각처) 步向街道獨輾轉(보향가도독전전) 賣牛歸人背影若(매우귀인배영약) 我欲與彼食素麪(아욕여피식소면)   世上固似大宴家(세상고사대연가) 何處不有欲泣人(하처불유욕읍인) 心門由是一二閉(심문유시일이폐) 黑暗如飢到夕曛(흑암여기도석훈) 淚痕不乾心自露(누흔불건심자로) 我欲與彼食溫麪(아욕여피식온면)   [주석] * 欲食(욕식) : 먹으려고 하다, 먹고 싶다. / 素麪(소면) : 국수. 常曰(상왈) : 흔히 ~라고 말하다. / 人生世間事(인생세간사) :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일. 誠如(성여) : 정말 ~과 같다. / 米飯(미반) : 쌀밥. / 毫無倦(호무권) : 조금도 물리는 것이 없다. 時時(시시) : 때때로. / 破舊(파구) : 해어지고 낡다. / 飯館裏(반관리) : 식당 안. 老媼(노온) : 늙은 아주머니. / 煮素麪(자소면) : 국수를 끓이다, 끓인 국수. 心傷(심상) : 마음을 다치다, 마

      2019-10-01 10:30
    • 물고기에게 배우다, 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맹문재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 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

      2019-09-24 10:42
    • 멀리서 빈다, 나태주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태헌의 한역] 遠處祈求(원처기구)   吾人未知處(오인미지처) 君留如花笑(군류여화소) 世間有一君(세간유일군) 重新朝輝耀(중신조휘요)   吾君未知處(오군미지처) 吾留如草息(오류여초식) 世間有一吾(세간유일오) 重新夕寥寂(중신석료적)   如今秋氣動(여금추기동) 千萬君莫痛(천만군막통)   [주석] * 遠處(원처) : 먼 곳, 멀리서. / 祈求(기구) : 기도(祈禱), 기도하다, 빌다.   吾人(오인) : 나[吾]. / 未知處(미지처) : (아직) 알지 못하는 곳. 君留(군류) : 그대가 머물다, 그대가 있다. / 如花笑(여화소) : 꽃처럼 웃다. 世間(세간) : 세상(世上). / 有(유) : 있다. / 一君(일군) : 한 사람 그대. 한문에서는 보통 ‘一君’이라고 하면 한 명의 임금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역자는 이 시에서 ‘한 명의 그대’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重新(중신) : 다시 한 번. / 朝輝耀(조휘요) : 아침이 눈부시다.   吾君(오군) : 당신, 그대. 吾留(오류) : 내가 머물다, 내가 있다. / 如草息(여초식) : 풀처럼 숨을 쉬다. 一吾(일오) : ‘一君’과 비슷하게 ‘한 사람 나’, ‘한 명의 나’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夕寥寂(석료적) : 저녁이 고요하다.   如今(여금) : 지금, 이제. / 秋氣動(추기동) : 가을 기운이 움직이다. 千萬(천만) : 부디, 아무쪼록. / 君莫痛(군막통) : 그

      2019-09-17 11:02
    • 추석, 유자효

      추석 유자효 나이 쉰이 되어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 철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 어머니, 아버지.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깊은 밤.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 아, 추석이구나. [태헌의 漢譯] 秋夕(추석) 忽憶幼年多羞慙(홀억유년다수참) 齒算五十難成眠(치산오십난성면) 雙親駕鶴遠逝日(쌍친가학원서일) 不肖孤兒省事前(불초고아성사전) 深夜盤...

      2019-09-10 09:16
    • 코스모스, 김명숙

      코스모스 김명숙 산골 이장 집 막내딸 분홍색 원피스에 높은 하이힐 신고 후리후리한 큰 키에 낭창낭창한 허리 간들대며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마을 길섶에 버스 기다리고 서 있다. [태헌의 한역] 秋英(추영) 山村里長小女兒(산촌리장소녀아) 好著粉紅連衣裙(호착분홍련의군) 足履高鞋益瘦長(족리고혜익수장) 娉娉嫋嫋動腰身(빙빙뇨뇨동요신) 自從淸晨黎明時(자종청신려명시) 路邊佇待巴士臻(노변저대파사진) [주석] * 秋英(추영) ...

      2019-09-03 14:55
    • 사랑, 안도현

      사랑 안도현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태헌의 한역】 愛(애) 非是夏炎蟬嘶噪(비시하염선시조) 卽是蟬啼夏如湯(즉시선제하여탕) 蟬知愛是傍熱哭(선지애시방열곡) 不鳴不見故蟬鳴(불명불견고선명) [주석] * 愛(애) : 사랑. 非是(비시)...

      2019-08-27 10:09
    • 섬진강 여울물, 오수록

      섬진강 여울물   오수록   산책 삼아 하늘을 날던 물새들 일제히 날아 내려와 모래톱을 원고지 삼아 발로 새 시를 쓴다 섬진강 여울물은 온종일 소리 내어 읽는다 그 소리 유장하여 바다에서도 들린다   【태헌의 한역】 蟾津灘水(섬진탄수)   水鳥飛天做散步(수조비천주산보) 一齊落下作新賦(일제락하작신부) 以沙爲紙以足錄(이사위지이족록) 蟾津灘水盡日讀(섬진탄수진일독) 讀聲也悠長(독성야유장) 海畔亦可聽(해반역가청)   [주석] * 蟾津(섬진) : 섬진강. / 灘水(탄수) : 여울물. 水鳥(수조) : 물새. / 飛天(비천) : 하늘을 날다. / 做散步(주산보) : 산보로 삼다. 一齊(일제) : 일제히. / 落下(낙하) : 낙하하다. / 作新賦(작신부) : 새로운 시를 짓다. 以沙爲紙(이사위지) : 모래톱을 종이로 삼다. / 以足錄(이족록) : 발로 기록하다. 盡日(진일) : 진종일, 온종일. / 讀(독) : 읽다. 讀聲(독성) : 읽는 소리. / 也(야) : 주어나 목적어[빈어] 뒤에 쓰여 앞말을 강조하는 조사(助詞). / 悠長(유장) : 유장하다, 길고 오래다. 海畔(해반) : 바닷가. / 亦(역) : 또, 또한. / 可聽(가청) : 들을 수 있다, 들린다.   [직역] 섬진강 여울물   물새들이 산책삼아 하늘 날다가 일제히 내려와 새 시를 짓는다 모래톱을 종이 삼아 발로 적자 섬진강 여울물이 온종일 읽는다 읽는 소리 유장하여 바닷가에서도 들린다   [한역 노트] 눈이 시리도록 맑은 서정시를 대하면 역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소년이 된다. 그 옛날 청담(淸談)이 권력(權力)과 금력(金力)의 얘기가 빠진 얘기였다면, 요즘에는 이런 서정시가 바로 청담이 아닐까 싶다

      2019-08-20 11:35
    • 무더위, 박인걸

      무더위 박인걸 당신의 뜨거운 포옹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팔은 힘이 쭉 빠지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멈출 것만 같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대 사랑의 에너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번져나간다. 잔디밭이라도 어느 그늘진 곳이라도 아무 말 없이 드러누울 테니 그대 맘대로 하시라. 【태헌의 한역】 蒸炎(증염) 吾君抱持似熱火(오군포지사열화) 吾終不拒自暴棄...

      2019-08-13 13:23
    • 계란을 생각하며, 유안진

      계란을 생각하며 유안진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그런 거겠지 【태헌의 한역】 思鷄卵(사계란) 夜起佇坐顧形影(야기저좌고형영) 他人料吾是批判(타인료오시비판) 吾人料吾卽察省(오인료오즉찰성) 他人破卵爲煎蛋(타인파란위전단) 吾人自啐作鷄雛(오인자줄작계추) 換骨奪胎也應...

      2019-08-06 10:30
    • 한여름, 고두현

      한여름 고두현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태헌의 한역】 盛夏(성하) 聞說南方霖雨連(문설남방임우련) 仍慣欲打問候電(잉관욕타문후전) 嗚呼今卽親不存(오호금즉친부존) [주석] * 盛夏(성하) : 한여름. 聞說(문설) : 듣자 하니 ~이라 한다, ~라고 듣다. / 南方(남방) : 남쪽, 남녘. / 霖雨連(임우련) : 장맛비[霖雨]가 이어지다, 장마 들다. 仍慣(잉관) :...

      2019-07-30 10:56
    • 여름 숲, 권옥희

      여름 숲 권옥희 언제나 축축이 젖은 여름 숲은 싱싱한 자궁이다 오늘도 그 숲에 새 한 마리 놀다 간다 오르가슴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 【태헌의 한역】 夏林(하림) 夏林常漉漉(하림상록록) 便是活子宮(변시활자궁) 今日亦一鳥(금일역일조) 盡情玩而行(진정완이행) 極感搖樹枝(극감요수지) 靑水滴瀝降(청수적력강) [주석] * 夏林(하림) : 여름 숲. 常(상) : 언제나, 늘. / 漉漉(녹록) ...

      2019-07-23 10:30
    • 들꽃, 박두순

        들꽃 박두순   밤하늘이 별들로 하여 잠들지 않듯이   들에는 더러 들꽃이 피어 허전하지 않네   너의 조용한 숨결로 들이 잔잔하다   바람이 너의 옷깃을 흔들면 들도 조용히 흔들린다   꺾는 사람의 손에도 향기를 남기고 짓밟는 사람의 발길에도 향기를 남긴다   【태헌의 한역】 野花(야화)   夜天因星不入睡(야천인성불입수) 野由野花不空虛(야유야화불공허) 汝氣安穩野寂靜(여기안온야적정) 風搖汝衣野亦搖(풍요여의야역요) 野花遺香折人手(야화유향절인수) 野花遺香踏人趺(야화유향답인부)   [주석] * 野花(야화) : 들꽃. 夜天(야천) : 밤하늘. / 因星(인성) : 별로 인하여, 별 때문에. / 不入睡(불입수) : 잠에 들지 못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다. 野(야) : 들. / 由野花(유야화) : 들꽃으로 말미암아, 들꽃 때문에. / 不空虛(불공허) : 공허하지 않다, 허전하지 않다. 汝氣(여기) : 너의 기운, 너의 숨결. / 安穩(안온) : 평안하다, 조용하다. / 野寂靜(야적정) : 들이 고요하다, 들이 잔잔하다. 風搖汝衣(풍요여의) : 바람이 너의 옷을 흔들다. / 野亦搖(야역요) : 들 또한 흔들리다. 野花遺香(야화유향) : 들꽃이 향기를 남기다. / 折人手(절인수) : 꺾는 사람의 손. 踏人趺(답인부) : 밟는 사람의 발꿈치, 밟는 사람의 발.   [직역] 들꽃   밤하늘은 별들로 인해 잠들지 않고 들은 들꽃으로 말미암아 허전하지 않네 너의 숨결 조용하여 들이 잔잔하고 바람이 너의 옷깃 흔들면 들 또한 흔들리지 꺾는 사람 손에도 들꽃은 향기를 남기고 짓밟는 사람 발에도 들꽃은 향기를 남긴다   [한역 노트] 우리 현대시에는 들꽃을 노래한 시가 정말 많아

      2019-07-16 10:00
    • 수선화에게,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2019-07-09 13:00
    • 고사, 조지훈

      고사 조지훈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西域) 만리(萬里)ㅅ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태헌의 한역】 古寺(고사) 敲打木魚不勝眠(고타목어불승면) 姸麗童僧忽入睡(연려동승홀입수) 世尊無語作微笑(세존무어작미소) 輝燿霞下牡丹墜(휘요하하모란추) [주석] 敲打(고타) : 두드리다. / 木魚(목어) : 목탁(木鐸). / 不勝眠(불승면) :...

      2019-07-02 10:53
    • 윤사월, 박목월

      윤사월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태헌의 한역】 閏四月(윤사월) 松花粉飛孤峰下(송화분비고봉하) 四月日長黃鳥鳴(사월일장황조명) 山守獨家眼盲女(산수독가안맹녀) 附耳門柱暗暗聽(부이문주암암청) * 四月指閏四月(사월지윤사월) [주석] 松花粉(송화분) : 송화 가루. / 飛(비) : 날다. / 孤峰(고봉) : 외...

      2019-06-27 10:30
    • 문을 열며...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는 우리의 현대시를, 한시(漢詩)로 옮긴 한역시(漢譯詩)와 곁들여 감상해보는 코너이다. 이 코너를 들여다볼 독자들 가운데는 멀쩡하게 잘 있는 한글시를 왜 굳이 골치 아프게 한시로 옮겼느냐고 질문할 분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편안함과 용이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한글시를 한시로 옮기는 일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어리석음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영화인들은 ...

      2019-06-26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