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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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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태헌의 한역】


    致水仙花(치수선화)



    勸君勿哭泣(권군물곡읍)


    孤寂故爲人(고적고위인)


    圖生乃是耐孤寂(도생내시내고적)


    莫待終不來電信(막대종불래전신)



    雪則行雪路(설즉행설로)


    雨則行雨徑(우즉행우경)


    鷸子看君葭林裏(휼자간군가림리)


    上帝時淚因孤煢(상제시루인고경)



    鳥坐樹枝緣幽獨(조좌수지연유독)


    君蹲水邊由孤單(군준수변유고단)


    山影覺孤下閭巷(산영각고하여항)


    鐘聲感單響播遠(종성감단향파원)



    [주석]


    * 致水仙花(치수선화) : 수선화에게. ‘致’는 ‘~에게’의 뜻이다.


    勸君(권군) : 그대에게 권하다. / 勿(물) : ~을 하지 말라. / 哭泣(곡읍) : 울다.


    孤寂(고적) : 외롭다. / 故(고) : 고로, 그러므로. / 爲人(위인) : 사람이다.


    圖生(도생) : 삶을 도모하다, 살다. / 乃是(내시) : ~이다. / 耐孤寂(내고적) : 외로움을 견디다.


    莫待(막대) : ~을 기다리지 말라. / 終(종) : 끝내. / 不來電信(불래전신) : 오지 않는 전화(電話).



    雪(설) : 눈이 내리다. / 則(즉) : ~하면. / 行雪路(행설로) : 눈길을 가다.


    雨(우) : 비가 내리다. / 行雨徑(행우경) : 빗길을 가다.


    鷸子(휼자) : 도요새. / 看君(간군) : 너를 보다. / 葭林裏(가림리) : 갈대 숲 속.


    上帝(상제) : 하느님. / 時(시) : 때때로, 이따금. / 淚(루) : 눈물을 흘리다. / 因孤煢(인고경) : 외로움으로 인하여, 외로움 때문에.



    鳥坐樹枝(조좌수지) : 새가 나뭇가지에 앉다. / 緣幽獨(연유독) : 외로움으로 인하여, 외로움 때문에.


    君蹲水邊(군준수변) : 네가 물가에 (쭈그리고) 앉다. / 由孤單(유고단) : 외로움으로 말미암아, 외로움 때문에.


    山影(산영) : 산 그림자. / 覺孤(각고) : 외로움을 느끼다, 외로움을 알다. / 下閭巷(하여항) : 마을로 내려오다.


    鐘聲(종성) : 종소리. / 感單(감단) : 외로움을 느끼다, 외로움을 알다. / 響播遠(향파원) : 울림이 멀리까지 퍼지다, 멀리까지 울리다.



    [직역]


    수선화에게


    (네게 권하나니) 울지 마라


    외롭기 때문에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


    끝내 오지 않을 전화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고


    하느님도 가끔은 외로움 때문에 눈물 흘린다.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움 느껴 마을로 내려오고


    종소리도 외로움 느껴 멀리까지 울린다.



    [한역 노트]


    연(聯) 구분 없이 12행으로 구성된 원시(原詩)를 역자는 3단락 12구로 옮겨보았다. 앞 두 단락은 오언구(五言句:1행이 5자로 된 시구)와 칠언구(七言句:1행이 7자로 된 시구)를 각 2구씩 사용하였으며, 마지막 단락은 칠언 4구로 구성하였다.


    일률적으로 칠언구로 통일하지 않고 오언구도 사용한 까닭은, 원시에 없는 내용을 부득이 덧보태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역시의 첫 번째 단락 제1구에 쓰인 “勸君(권군)” 역시 원시에 없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내용상 충분히 추가가 가능한 시어(詩語)이다. 이와는 달리 원시 제7행의 “가슴 검은”과 제11행의 “하루에 한 번씩”은 한역을 하면서 시화(詩化)시키지 못하였다. 이처럼 내용이 넘쳐 무엇인가를 버려야 하는 것도 한역(漢譯)의 난점 가운데 하나이다.


    한역시는 각 단락마다 환운(換韻:운을 바꾸는 일)하였으며, 모두 짝수 구에 압운(押韻:일정한 위치에 운자를 두는 일)하였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人(인)’과 ‘信(신)’, ‘徑(경)’과 ‘煢(경)’, ‘單(단)’과 ‘遠(원)’이다.


    수선화 하면 “제비도 날아오기 전에 피어 3월의 미풍을 황홀하게 하는 꽃”으로 묘사한 세익스피어의 글귀가 먼저 떠오르는 역자에게, 이 시의 청자(聽者)인 수선화를 ‘모든 인간’으로 보는 해설은 다소 뜻밖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가 굳이 울 필요가 없다고 한 시인의 뜻에는 깊이 공감한다. ‘가슴 검은 도요새’는 필시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일 테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 더더욱 울 필요가 없을 듯하다. 진짜로 울 일이 있으면 도요새도 못 보게 꼭꼭 숨어서 조용히 울자.


    현대 서정시에 클래식풍의 곡을 붙인 노래를 가곡(歌曲)으로 부르고 있지만, 요즘에는 현대 서정시에 대중가요풍의 곡을 붙인 경우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의 이 시를 대중가요 버전(Version)으로 감상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하여, 동영상 공유 사이트 등을 통해 찾아서 한번 감상해 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2019. 7. 9.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강성위 필진
    자는 백안(伯安), 호는 태헌(太獻)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연구박사, 서울대학교 중국어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조그마한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저술 활동을 하며 한시(漢詩) 창작과 번역을 지도하는 한편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출강하여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30여 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창작 한시집으로 ≪술다리[酒橋]≫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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