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별세한 최태섭 한국유리 명예회장은 1910년 8월26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인은 22세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사업을 시작했다.

첫 사업인 정미업이 실패하자 38년 만주로 건너가 동화공창이란 비누공장을
세웠다.

만주산 콩기름으로 만든 비누는 인기 상품이 됐다.

41년 미쓰비시 미쓰이 등 무역회사와 거래하면서 회사명을 일흥상회로
바꾸었다.

이때 최회장에게 평생사업의 기본정신을 일깨워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쓰이와 콩기름 수십화차분 매수계약을 맺었고 이어 중국상인과 콩기름
매도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콩기름을 매수해 중국인에게 넘겨주기 전에 가격이 수십배로
폭등했다.

중국인과 계약을 파기할 경우 위약금을 물고도 당시 돈 30만원(쌀 6만가마
상당)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 최회장의 머리에는 사업을 정직하게 하라는 서탑교회 목사의 충고가
떠올랐다.

그는 스스로를 책망하며 콩기름을 약속대로 중국인에게 넘겨주었다.

이같이 신용을 지킨 사연이 중국상인들에게 소문나면서 그는 오히려 더 큰
규모의 무역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청부정신을 기업이념으로 삼았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6.25전쟁 땐 피난을 떠나기전 거래은행을 찾아가 빚을 갚아 신용을 잘지키는
기업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57년 최회장은 이봉수(현 한국유리회장), 고 김치복(전 대한화재해상보험
회장)과 더불어 국내 최초로 인천에 판유리공장을 건립했다.

이 판유리공장은 당초 상호를 인천유리로 정했으나 14일만에 국가 기간산업
에 합당한 명칭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와 회사명을 한국유리공업으로
바꿨다.

한국유리는 57년 9월30일 용해로에 첫 불을 지펴 판유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날 준공식에선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점화했다.

이 회사는 79년 군산에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의 플로트공법 판유리공장
을 완공했으며 지난해초 그룹이름을 한글라스로 개명했다.

최회장은 특히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믿음과 사랑을 실천했다.

한국기독교실업인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임원 등을 맡아 헌신했고
어린이재단 YMCA 등 단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김인득 전 벽산스룹회장, 강신호 동아제약회장, 정인욱 강원산업
명예회장, 유창순 롯데제과고문 등과 돈독한 친분관계를 가졌으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자 등과 함께 국내 창업 1세대였다.

< 이치구 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