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0엔당 1000원대였던 원·엔 환율이 그제 장중 800원대로 떨어지는 등 ‘슈퍼 엔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통화 긴축에도 제로금리 기조를 고수하는 일본은행이 추가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역대급 엔저를 가속화했다.

이런 현상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것은 그 이면에 도사린 위험 때문이다. 슈퍼 엔저는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 등 우리 주력 제품의 상대적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수출경합도는 69.2다. 한국과 중국(56.0), 한국과 독일(60.3)보다 높다. 엔화 가치가 1%포인트 하락할 때 한국 수출 물량은 0.2%포인트, 수출액은 0.61%포인트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한 일본은 ‘지정학적 수혜’를 바탕으로 제조업 부활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1980년대 플라자 합의와 반도체 협정 등을 통해 일본 엔화 가치를 두 배로 끌어 올리고 일본 제품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차단한 미국이 이젠 가장 강력한 후원군으로 나섰다. 미국의 용인 아래 진행되는 30년 만의 슈퍼 엔저가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잃어버린 30년’을 뒤집을 반전의 서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제조업 부활로 가장 큰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국내 주력 기업들이다. 과거 플라자 합의 덕을 봤지만 이번엔 ‘역(逆)플라자 합의’로 반격을 당하는 상황이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행 여행객 폭증으로 인한 대규모 관광수지 적자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2007년 방한 당시 “한국은 유망한 제조업 국가이고, 증시는 세계 다른 곳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워런 버핏 미국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지금은 일본 기업을 극찬하며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무척 시사적이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때 80%를 차지할 정도로 제조 최강국이던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한 전철을 우리가 고스란히 재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지경학적 환경 변화와 맞물려 기록적 엔저 현상을 국내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재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