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의 인위적 물가 통제에 일침을 날렸다. 추 부총리가 엊그제 TV에 출연해 “라면값,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며 공개 압박한 데 대해 “정치적 말씀으로 해석한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발언의 방점은 물가 통제라는 정부의 오랜 타성과 관행 타파에 찍혀 있다.

이 총재는 “지난해 원자재값이 급등해 부득이하게 특정 품목을 관리했고 이는 모든 나라의 공통적 현상”이라며 물가 관리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물가 관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 재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과잉 개입의 위험을 환기시켰다. “전기 등 에너지 요금을 다른 나라보다 덜 올려서 얻은 혜택이 있지만 재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내놨다.

이 총재의 발언은 생필품 등의 물가 관리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시급히 “정상화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한은 설립 목적인 물가 안정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가격 통제를 통화당국 수장이 비판한 격이라 더욱 의미 있다. ‘경제적 자유’를 앞세우면서도 수시로 시장에 개입하는 관행을 용기 있게 지적한 고위공직자의 존재에 안도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잖을 것이다. 최근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 명단에 이 총재가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이 총재의 지적처럼 한국의 물가 관리는 경제 규모나 달라진 글로벌 환경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눈앞의 정책목표 달성에 급급한 찍어누르기식은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을 부른다는 게 오랜 경험이다. 지난 정부에서 정치적 논리를 앞세워 장기간 억제했던 전기 가격이 한꺼번에 터져 국민 부담과 울화통을 한꺼번에 키운 게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가격 관리가 불가피할 때도 시장 참여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세련된 방식이어야 한다. 라면 가격 관리도 마찬가지다. 올 들어 국제 밀 가격이 50%가량 급락했지만 원부자재값, 인건비, 물류비, 에너지 비용 등 제반 경비는 지속 상승했다. 정부 눈치 보느라 제때 가격을 올리지 못한 설탕값마저 폭등 중이다. 이런 사정을 외면한 채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가격 왜곡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