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서 열린 한일재계회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와중에 양국 경제계 리더들의 대면회의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행사에서 양국 경제인들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8개 항의 ‘제29회 전경련·게이단렌 한일재계회의 공동성명’도 현시점에 필요한 협력 원칙과 실천 방향을 잘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회의에서의 논의는 한마디로 1998년 ‘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 정신을 ‘2.0 버전’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무비자 부활, 한국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통화스와프 재개,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서의 공동 협력 등 실천 프로그램까지 협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장기 경색된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경제계가 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양국의 퇴행적 정치가 악화시킨 선린 관계를 ‘국제 현실과 미래 발전’ 관점에서 경제·산업계가 앞장서 풀어야 할 상황이다. “한국 기업의 민첩함과 일본 기업의 신중함이 합치면 세계 최강의 조합”이라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 인사말이 손님맞이 덕담 이상으로 들리는 이유다. “일본 경제계는 한·일 정상 및 각료 간 대화의 조기 재개를 희망한다”는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 회장의 전언도 그래서 관심을 끈다.

지난주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도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북핵 등 안보 문제가 주로 논의됐지만, 국제 정세에서 안보와 경제는 하나가 된 지 오래다.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한·일의 양호한 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양국 발전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안정에도 기여한다”는 이번 공동성명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경제인들이 미래 발전 아젠다를 설정하고 우호적 분위기도 조성하겠지만, 결국 양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조기에 정상화해야 하고, ‘허가 절차’ 등 껍데기만 남은 채 슬그머니 실효가 없어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부문에 대한 수출규제 등도 다 털어낼 필요가 있다. 지난달 2년3개월 만에 재개된 김포~하네다 하늘 길처럼 양국의 ‘셔틀외교’가 조기에 정상화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