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아웃 현상일까? 정면의 우뚝한 새하얀 언덕 경사면에 반사된 햇빛으로 인해 일순간 공간감이 사라진다.

하릴없이 질끈 감은 눈꺼풀 위로 그 하얀 빛이 벌겋게 쏟아져 들어온다.

석고반죽을 거칠게 터치한 것 같은 경사진 언덕,그 아래 너른 연못 가득 찰랑거리는 연한 터키석 물빛…. 데니즐리 외곽 북쪽으로 곧게 뻗은 도로 끝 모퉁이에 펼쳐진 파묵칼레의 풍경은 이제 막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선 듯 비현실적이다.

파묵칼레는 터키 아나톨리아반도 1만년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눈 앞에 떡 버티고 선 거대한 석회암 언덕 모습이 그렇게 경이로울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났을까.

쇠켈레즈 산에 기대고 있는 언덕의 경사면을 타고 아래쪽 리코스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온천물이 부린 조화라고 한다.

파묵칼레 언덕 꼭대기에 이르러 지표면에 드러난 36도의 온천물이 식으면서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탄산칼슘 결정이 자라는 듯 쌓인 결과라는 설명이다.

무려 1만4000년에 달하는 시간의 흔적이란다.

온천물이 원래의 양만큼 정상적으로 흘러내렸을 때 1년에 1㎜ 두께로 4.9㎢의 면적이 탄산칼슘 결정으로 뒤덮인다는 계산에 근거한 것이다.




지금의 모습이 형성되기까지의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그 모습 또한 눈을 의심케한다. 언덕 경사면의 굴곡 그대로 다랑이 논 모습을 하고 있다. 리코스 계곡 밑바닥부터 70m(해발 360m),그러니까 25층 아파트 높이의 새하얀 언덕 전체가 층층이 쌓인 다랑이 논을 연상시킨다. 고급 아파트의 원형 발코니가 상하좌우로 이어붙여진 것 같기도 하고, 층층이 부서져 내린 거대한 빙산의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은 하얗게 벌어진 목화송이를 성처럼 쌓아 놓은 것으로 그 장관을 표현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터키말로 파묵(목화) 칼레(성)다. 계단 부분 앞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석순의 생김새도 근사하다. 솜씨좋은 장인이 공들여 장식해 놓은 것 같다. 건축물 처럼 무슨 양식이라고 이름을 만들어 붙여줘야만 할 것 같다.

파묵칼레 언덕 꼭대기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 언덕 오른쪽 가장자리를 맨발로 걸어서 오르거나, 차를 타고 왼쪽길로 빙 둘러 간다. 평원을 이루고 있는 언덕 정상에 서면 또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경사진 석회암층과 아래쪽에 형성된 연못,그리고 그 너머의 푸르고 너른 계곡 풍경이 한 눈에 잡힌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들고 석회암 위로 흐르는 온천물의 느낌을 즐긴다. 걷어올린 종아리와 팔뚝에 온천물을 끼얹고,작정한 듯 세수를 하는 이들도 많다. 모두들 물이 좋다는 표정이다. 이곳 온천물의 질은 예로부터 잘 알려져 왔다고 한다. 그에 얽힌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옛날 아주 못생긴 처녀가 결혼상대를 찾지 못하자 자살을 결심하고,석회암 언덕 아래로 몸을 던졌다. 온천물이 고인 계단부분에 떨어진 그 처녀에게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상한 데 없이 깨어난 처녀는 몰라볼 만큼 예뻐져 이 지역 영주의 아들과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고혈압 관절염 심장병 등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온천물에 대한 소문은 옛날 이 일대가 치료를 위한 온천명소로 이름을 날리게 했다. 카펫을 짤 흰 실크 실을 더욱 희게,색깔을 입힌 실크 실은 더 밝고 선명하게 만드는 데도 이 온천물을 썼다고 한다.

이제는 석회암 언덕 경사면의 그 계단식 온천풀을 즐길 수 없어 아쉽다.



언덕 위 편평한 부분과 오른쪽 가장자리를 제외한 경사면의 계단식 온천풀은 다 바짝 말라 있다.

1997년부터 일부 정해진 곳이 아니면 걸어 들어갈 수 없게 통제하고 있다.

온천물도 정해진 곳으로만 흘려보낸다.

계단부분의 석회암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석회암의 흰색을 유지하고, 이끼가 끼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온천물 자체가 확 줄어든 이유도 있다.

아쉬운대로 온천욕을 즐기려면 '앤티크 풀'을 찾으면 된다.

유수풀 형태의 노천 온천수영장인데 로마시대 굵은 장식기둥 조각들이 물밑에 가득해 운치가 남다르다.

로마시대의 황제와 클레오파트라도 찾아 즐겼다고 한다.

파묵칼레는 석회암 언덕과 온천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다.

언덕 정상 평원에 남아 있는 고대유적들이 남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기원전 2세기께 페르가멈 왕국의 에메네스 2세가 세운 도시, 히에라폴리스 유적이다.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란 뜻. 도시가 모양새를 갖추기 전부터 온천주변에 종교적 성소들이 들어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페르가멈 왕국의 태조이며 미시아의 지배자인 텔레포스왕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딴 것이란 얘기도 있다.

도시는 기원전 133년 로마제국으로 편입됐다.

서기 17년과 60년의 지진 여파로 로마풍으로 변해갔다.

특히 세베러스황제와 카라칼라황제 시절에는 '동쪽으로 향하는 관문'으로 크게 번성했다.

앤티크 풀 뒤에 있는 원형극장이 로마제국 시절의 영화를 보여준다.

로마 5현제 중의 하나인 하드리아누스황제 시절인 2세기께 지어진 이 원형극장은 8500∼1만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대욕탕의 원형도 남아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3개의 아치문 뒤로 이어지는 돌길 주변은 로마시대 도시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지역 수호신인 아폴로에 바치는 신전의 흔적도 남아 있다.

예수 12제자 중 한 명으로 80년 이곳에서 순교한 사도 빌립을 기리기 위한 교회도 서 있다.

이상하리만치 무덤이 널려 있다.

반듯한 석관묘에서부터 우리나라 왕릉과 비슷한 봉분형 무덤까지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무덤이 1200여개를 헤아린다.

유명한 온천지역이었다는 게 이들 무덤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 온천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병력의 환자들이 몰려들었는데, 운이 없어 치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고향에 가지 못하고 묻혔다는 것이다.

1354년의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 분위기가 그래서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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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투어.자유투어.현대드림투어 등이 터키여행 안내 ]

터키의 정식국명은 터키공화국이다.

아시아 대륙 서쪽 끝 아나톨리아 반도(97%)와 유럽쪽 트라키아 반도(3%) 일부에 걸쳐 있다.

동쪽으로 이란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남쪽으로 이라크 시리아, 북서쪽으로 불가리아 그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동쪽을 제외하고 흑해 지중해 에게해에 면하고 있다.

수도는 중북부의 앙카라. 공용어로 터키어를 쓰고 있다.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3.5배, 인구는 6700만명. 80%가 터키인이며 99%가 이슬람교도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종교적 규율 적용에 엄격한 편은 아니다.

한국인을 보면 누구나 '칸카르데쉬'(혈맹)라고 할 정도로 우호적이다.

통화단위는 예테르(예니터키리라). 요즘 환율은 1달러에 1.4예테르 안팎. 한국보다 7시간 늦다.

3월 말에서 10월 말까지 서머타임을 적용, 6시간 늦다.

220V 전기를 쓴다.

터키항공(02-777-7055, www.turkishairlines.co.kr)이 매주 월·목·토요일 ㅓ세 차례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오후 1시20분 인천공항을 뜬다.

이스탄불에서는 수·금·일요일 출발한다.

비행시간은 11시간40분. 대한항공도 이스탄불 정기노선을 열고, 매주 화·금·일요일 세 차례 직항편을 띄운다.

파묵칼레는 이스탄불 남쪽,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데니즐리에서 20km 떨어져 있다.

데니즐리는 섬유산업이 발달된 도시. 수탉이 상징물이어서, 작은 수탉 도자기인형 등의 기념품이 많이 보인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지 반대편의 산 정상께에 콜로새 호텔 등 5개의 특급호텔이 있다.

호텔 내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하나투어(02-2127-1306), 자유투어(02-3455-0156), 현대드림투어(02-3014-2333) 등의 여행사에서 터키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파묵칼레=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