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금리 인상 사이클에 가장 큰 고비가 찾아왔다는 경고가 나온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해도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서다. 시장의 예상보다 더 길고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측이 잇따른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연례 경제 보고서를 통해 통화 긴축의 마지막 단계에서 세계 경제가 고비에 직면할 것이라고 25일(현지시간) 진단했다.

BIS는 "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지만, 물가 안정을 위한 통화 긴축 마지막 과정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며 "금리 수준은 시장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IS에 따르면 통화정책은 아직 인플레이션 억제에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물가 상승세가 완화된 건 공급망 회복과 원자재 비용 하락 덕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14일 미 노동부는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4% 올랐다고 밝혔다. 2년 2개월 만의 최소폭 상승이다.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11% 떨어졌다. 다만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기 대비 5.3% 상승했다. 일시적인 변동 요인을 빼고 보면 여전히 물가가 높은 수준에서 버티고 있다는 설명이다.

BIS는 미국의 노동시장이 견고한 탓에 물가상승률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금리가 치솟아도 고용시장에선 초과 수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임금을 인상해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때문에 '임금 인상→물가 상승→추가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임금의 나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BIS는 "고용 시장이 견고하고 서비스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임금과 물가의 상관관계가 강화하며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국 중앙은행도 이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중 유동성을 대량 흡수해도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어서다. 인플레이션이 제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더 강력한 통화 긴축을 펼치는 이유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연내 2회 이상 금리를 올리겠다고 선언했고, 영국 중앙은행(BOE)은 지난 22일 기준금리를 각 0.5%포인트씩 인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폭을 기록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도 같은 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문제는 시장 상황이 더 이상 높은 금리 수준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금리가 올라갈수록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커지는 추세다. 이미 지난 3월부터 미국과 스위스에서 은행 위기가 나타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상업용 부동산 대출 시장이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BIS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뒤 3년 이내에 대규모 금융위기가 뒤따랐다.

위기를 체감한 각국 중앙은행 수장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오는 28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개최되는 유럽중앙은행(ECB) 연례회에 참석할 계획이다. 파월 Fed 의장을 비롯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 우에다 가즈오 일본 중앙은행 총재 등이 참석한다.

연례회에 참석한 중앙은행 수장의 발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의 발언에 따라 각국 통화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어서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 환경의 변동성'을 두고 토론을 펼칠 예정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