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전력시장을 바꾸는 기업의 힘


‘RE100’은 2014년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 비영리 기구인 기후 그룹(The Climate Group)이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와 함께 만든 캠페인입니다. 국내에서도 이 캠페인에 참여하려는 기업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가입 신청이 몰려 심사를 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립니다. 대기업이라는 명확한 타깃 설정과 ‘100% 재생에너지 사용’이라는 선명한 콘셉트로 가장 성공한 기후변화 대응 캠페인이 되었습니다.

RE100에 가입했든 가입하지 않았든, 재생에너지 확보는 모든 기업의 지상 과제입니다.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써야 합니다. 100% 재생에너지를 이미 달성한 애플은 협력업체에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합니다. 공급망을 포함해 탄소배출을 계산하는 스코프 3 배출량을 줄이려면 협력업체의 탄소배출 저감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기업은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을 짜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전력시장에 참여한 설비용량 기준으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중은 지난해 9.6%에 불과합니다. 100% 재생에너지 사용은 불가능합니다. 유럽은 사용 전력의 절반 가까이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합니다. 재생에너지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지만, 풀어야 할 난제가 많습니다. 먼저 지역주민의 반발이 심해 발전소를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허가가 까다롭고 복잡한 데다 기간도 오래 걸립니다. 오랜동안 전력 요금이 낮게 유지돼 가격 경쟁력에서 재생에너지가 밀립니다. 재생에너지 활성화는 전력시장의 구조 개편은 물론, 에너지 정책 전반의 재검토와 맞물려 있습니다.

RE100은 이 지점에서 기업의 힘에 주목합니다. 기업이 움직이면 세상이 바뀝니다. 기업이 강력한 수요자로 나서면 공급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재생에너지에 부정적인 일부 여론도 달라집니다. 재생에너지는 기업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정부 정책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5월호에 발표한 ‘한국 ESG 랭킹 120’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평가 기준에 대한 문의와 함께 낮은 순위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습니다. ESG 평가는 뜨거운 논쟁 대상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가 S&P500 ESG 지수에서 탈락하자 ‘ESG는 사기’라고 분노했습니다. ESG 평가기관마다 결과가 제각각인 건 매번 지적되는 문제입니다. 성격이 다른 ‘E’와 ‘S’·‘G’를 통합 평가한다는 건 무리이며, ‘E'만 떼어 따로 평가하는 것이 투자자에게 더 유익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유럽에서는 ESG 평가의 신뢰성과 비교가능성, 투명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많은 논란 중에도 분명한 것은, 일론 머스크처럼 ESG 평가에 분노할 수는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