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가상화폐 거래소 전광판. / 사진=연합뉴스
서울시내 한 가상화폐 거래소 전광판. / 사진=연합뉴스
“아직도 그런 걸 취재하고 있습니까.”

은행권의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계좌발급 문제를 취재하다가 금융당국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당국은 거래소를 비롯한 암호화폐 문제엔 손 댈 생각 없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뜻으로 읽혔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거래소’란 용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가상통화 취급업체’라고 표현했다. 암호화폐 법제화 등 제도권 진입이 되지 않은 탓이겠지만 한편으론 “거래소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로도 들렸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실명인증(KYC)과 자금세탁방지(AML) 장치 확보를 전제로 은행권의 거래소 가상계좌 신규 발급에 문제가 없다고 언급했다. 업계는 반신반의했다. 한 달 이상 지난 지금 ‘혹시나’ 기대는 ‘역시나’ 실망으로 바뀌었다. “체감상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가상계좌 발급은 요원하고 차라리 운신의 폭이 넓은 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니 이번엔 해외송금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안에서는 쪼이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막혔다”는 이들의 하소연이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질문을 바꿨다. 최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이 크게 내려빠지면서 당국이 걱정해온 투기과열 가능성도 줄었다. “이참에 확실한 규제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당국도 검토하고 있나요?”

다름 아닌 거래소들 스스로가 “규제를 원한다”고 말한다. 우려 요소가 많이 사라진 만큼 제도화를 통해 건전한 시장을 만들고, 당국이 관리하면서 산업을 키우자는 취지다. 하지만 “그렇게 변동성이 심한 걸 어떻게…”라며 말끝을 흐리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알 수 있었다.

이같은 답변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몇 달 전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제 도입 여부 취재를 할 때도 당국 관계자는 고액·의심 거래에 대해 “신고해서 광명 찾자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자연히 ‘자수해서 광명 찾자’ 문구가 연상됐다. 암호화폐라면 잠재적 범죄로 보는구나, 여실히 느꼈다.

뿐만이 아니다. 한 당국 고위관계자는 사석에서 암호화폐 얘기가 나오자 대뜸 ‘닥터 둠’(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언급했다. 루비니 교수는 “비트코인 가치는 0달러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인물. 금융당국이 암호화폐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의 부정적 시각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최악의 결정은,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판단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인정 못하겠다면 차라리 명확히 ‘불법’으로 규정하고 합법과의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당국이 손 놓은 사이 거래소가 100개 이상 난립하고 각종 투자자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서다.

아직도 그런 것 취재하고 있느냐 반문하기에 앞서 왜 아직도 암호화폐를 외면하고만 있는지 자문해야 하는 것 아닐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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