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시장 죽어가는데 국내 거래소 100개까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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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바이낸스 코리아’가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글로벌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한국법인으로 오인하기 십상인 이 업체는 “바이낸스 측과 협의해 설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증빙서류도 제시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간담회 직후 창펑자오 바이낸스 대표는 직접 “100% 사기”라고 확인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짝퉁’ ‘먹튀’ ‘사기’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찍히고 있다. 질 관리에 실패한 결과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거래소 신고·인가제 등을 미루는 사이 국내 거래소는 세 자릿수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실질적 거래가 이뤄지는 거래소는 절반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회원사로 둔 한국블록체인협회는 “국내 거래소가 100개 내외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그중 제대로 돌아가는 거래소는 50곳 정도”라고 밝혔다. 최근까지도 60~70개 수준으로 알려졌던 것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급증한 수치다.
◆ 코인 폭락, 거래소 난립 '엇박자' 투자자 위험성↑
암호화폐 시장은 급락을 거듭했다.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은 이달 들어 700만원대에서 300만원 가까이 빠진 400만원대로 떨어졌다. 비트코인 커플링(동조화) 패턴을 보이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 상황도 마찬가지다. 하락세가 비트코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시장상황이 최악인데도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크게 두 가지 요인이 꼽힌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의 활황장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의 가능성을 본 게 직접적 계기다. 거래소 설립시 별다른 자격요건이 없는 점도 난립을 부채질했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파고들 빈틈이 많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너무 허술하다. 구청에 몇 만원 내고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면 암호화폐 거래소를 열 수 있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낮은 진입장벽과 반비례해 범법 여지는 많다. 당국은 올 초 암호화폐 거래실명제를 실시하고 은행권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막았다. 하지만 일부 거래소는 법인계좌 밑에 개인계좌를 두는 ‘벌집계좌’ 거래로 피해갔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의하면 벌집계좌를 사용하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월 거래량은 2월 4조5997억원에서 8월 7조523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 코인 상장 수단으로 거래소 설립도…'모럴해저드'
거래중개 역할을 해야 하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스스로 플레이어로 뛰어드는 사례마저 보인다.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장은 “암호화폐를 발행했는데 거래소 상장이 어려우니 직접 거래소를 차려 자체 발행 암호화폐를 상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짚었다. ‘자가발전’인 셈이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한 외국계 암호화폐 거래소의 경우 “블록체인 프로젝트 인큐베이팅(보육) 및 엑셀러레이팅(투자·육성)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취지와 달리 자칫 거래소로서 중립성과 신뢰도를 잃는 사업 확장이 될 수 있다.
거래소 설립·운영에 특별한 제한이 없는 가운데 암호화폐 시장은 폭락, 거래소 사업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결국 손쉽게 거래소를 차린 뒤 투자자들을 꾀어 ‘한 탕’을 노릴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채굴형 거래소를 만들겠다며 암호화폐 공개(ICO)로 자금 수십억원을 모집한 뒤 지난 9일 갑자기 홈페이지와 채팅방을 폐쇄한 퓨어빗이 대표적이다. ‘먹튀’한 것이다. 이후 “피해액을 돌려주겠다”면서 암호화폐 거래 비밀번호 등 투자자 개인정보를 요구, 2차 사기까지 모의한 정황이 포착됐다.
위법 사례도 상당수다. 바이낸스 코리아가 해당된다. 거래소를 설립했지만 상표도용 논란에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간담회를 연 것은 의혹을 해소해 본격 운영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거짓 해명은 금세 들통 났다. ‘바이낸스 팔라우’와 협약했다는 내용의 증빙서류 역시 사문서 위조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정의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블록체인 태스크포스 특별위원)는 “바이낸스 본사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데도 본사와 관련 없는 바이낸스 팔라우에게 위임받은 뒤 정작 본사에는 확인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망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었다면 상표법 위반과 형법상 사기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당국 '노터치' 할 때 아니다…이젠 규제 내놔야"
이처럼 혼탁한 상황에도 암호화폐 거래소의 법적 인정이나 제도권화를 꺼리는 금융당국은 국내 거래소 숫자조차 공식 집계하지 않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만큼은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방침이 무색한 실정. 현황 파악조차 안 된 터라 옥석 가리기가 아닌 ‘장외 노터치’로 일관하겠단 입장으로 풀이된다.
현재의 방치 상태가 지속돼 부실·불량 거래소가 판 치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높다. 업계에선 최근 암호화폐 시세 폭락까지 겹치며 당국이 우려하는 투기 과열 가능성이 낮아진 만큼 이제라도 공식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하진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돈 벌어보겠다며 거래소를 막 차리는데 막상 시장은 나빠 어떤 사고가 터질지 걱정된다. 정부가 명확한 방침을 내놓아 컨트롤해야 할 때”라면서 “암호화폐 거래소 스스로도 보안·유동성 등에서 기존 금융시장 거래소와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문하며 신뢰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봉구/오세성/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암호화폐 거래소가 ‘짝퉁’ ‘먹튀’ ‘사기’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찍히고 있다. 질 관리에 실패한 결과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거래소 신고·인가제 등을 미루는 사이 국내 거래소는 세 자릿수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실질적 거래가 이뤄지는 거래소는 절반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회원사로 둔 한국블록체인협회는 “국내 거래소가 100개 내외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그중 제대로 돌아가는 거래소는 50곳 정도”라고 밝혔다. 최근까지도 60~70개 수준으로 알려졌던 것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급증한 수치다.
◆ 코인 폭락, 거래소 난립 '엇박자' 투자자 위험성↑
암호화폐 시장은 급락을 거듭했다.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은 이달 들어 700만원대에서 300만원 가까이 빠진 400만원대로 떨어졌다. 비트코인 커플링(동조화) 패턴을 보이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 상황도 마찬가지다. 하락세가 비트코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시장상황이 최악인데도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크게 두 가지 요인이 꼽힌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의 활황장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의 가능성을 본 게 직접적 계기다. 거래소 설립시 별다른 자격요건이 없는 점도 난립을 부채질했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파고들 빈틈이 많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너무 허술하다. 구청에 몇 만원 내고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면 암호화폐 거래소를 열 수 있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낮은 진입장벽과 반비례해 범법 여지는 많다. 당국은 올 초 암호화폐 거래실명제를 실시하고 은행권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막았다. 하지만 일부 거래소는 법인계좌 밑에 개인계좌를 두는 ‘벌집계좌’ 거래로 피해갔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의하면 벌집계좌를 사용하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월 거래량은 2월 4조5997억원에서 8월 7조523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 코인 상장 수단으로 거래소 설립도…'모럴해저드'
거래중개 역할을 해야 하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스스로 플레이어로 뛰어드는 사례마저 보인다.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장은 “암호화폐를 발행했는데 거래소 상장이 어려우니 직접 거래소를 차려 자체 발행 암호화폐를 상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짚었다. ‘자가발전’인 셈이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한 외국계 암호화폐 거래소의 경우 “블록체인 프로젝트 인큐베이팅(보육) 및 엑셀러레이팅(투자·육성)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취지와 달리 자칫 거래소로서 중립성과 신뢰도를 잃는 사업 확장이 될 수 있다.
거래소 설립·운영에 특별한 제한이 없는 가운데 암호화폐 시장은 폭락, 거래소 사업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결국 손쉽게 거래소를 차린 뒤 투자자들을 꾀어 ‘한 탕’을 노릴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채굴형 거래소를 만들겠다며 암호화폐 공개(ICO)로 자금 수십억원을 모집한 뒤 지난 9일 갑자기 홈페이지와 채팅방을 폐쇄한 퓨어빗이 대표적이다. ‘먹튀’한 것이다. 이후 “피해액을 돌려주겠다”면서 암호화폐 거래 비밀번호 등 투자자 개인정보를 요구, 2차 사기까지 모의한 정황이 포착됐다.
위법 사례도 상당수다. 바이낸스 코리아가 해당된다. 거래소를 설립했지만 상표도용 논란에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간담회를 연 것은 의혹을 해소해 본격 운영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거짓 해명은 금세 들통 났다. ‘바이낸스 팔라우’와 협약했다는 내용의 증빙서류 역시 사문서 위조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정의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블록체인 태스크포스 특별위원)는 “바이낸스 본사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데도 본사와 관련 없는 바이낸스 팔라우에게 위임받은 뒤 정작 본사에는 확인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망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었다면 상표법 위반과 형법상 사기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당국 '노터치' 할 때 아니다…이젠 규제 내놔야"
이처럼 혼탁한 상황에도 암호화폐 거래소의 법적 인정이나 제도권화를 꺼리는 금융당국은 국내 거래소 숫자조차 공식 집계하지 않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만큼은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방침이 무색한 실정. 현황 파악조차 안 된 터라 옥석 가리기가 아닌 ‘장외 노터치’로 일관하겠단 입장으로 풀이된다.
현재의 방치 상태가 지속돼 부실·불량 거래소가 판 치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높다. 업계에선 최근 암호화폐 시세 폭락까지 겹치며 당국이 우려하는 투기 과열 가능성이 낮아진 만큼 이제라도 공식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하진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돈 벌어보겠다며 거래소를 막 차리는데 막상 시장은 나빠 어떤 사고가 터질지 걱정된다. 정부가 명확한 방침을 내놓아 컨트롤해야 할 때”라면서 “암호화폐 거래소 스스로도 보안·유동성 등에서 기존 금융시장 거래소와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문하며 신뢰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봉구/오세성/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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