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기술 스타트업에 1분기 미국 내 민간투자가 전년 대비 65% 늘었다. 배출량을 줄이면서 산업 생산 효율성까지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은 순풍을 타고 있다. 다만 클린 테크 기업도 넷제로보다 에너지를 강조하는 등 보수적 메시지를 채택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한경ESG] 글로벌 - 기후 기술 투자
핵융합 분야의 선구자인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Commonwealth Fusion Systems)가 매사추세츠에 있는 자사 시설에서 스파크(Sparc) 시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사진=블룸버그 제공
지난 6개월간 미국의 기후 기술 분야는 극심한 변화를 겪었지만, 이 산업에 대한 벤처 자금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그린 수소부터 차세대 배터리까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이후 기업들은 이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하고 있다. 트럼프는 탄소감축 솔루션에 대해 자금 삭감 또는 회수를 고려 중이며, 관세 정책은 해외에서 자재를 조달하는 기업에 새로운 장벽이 되고, 미국이 가진 기술의 해외 수요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기후 기술 산업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 석 달간 혼란을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 중이다. 적어도 일부 벤처 자본가는 백악관의 ‘에너지 주도권’이나 인공지능(AI) 주도 전략과 맞물리는 분야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전기차, 풍력터빈, 국제 기후 협약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여온 대통령 치하에서 오히려 민간 기술 투자가 증가하는 의외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주요 변화는 벤처 자본가와 스타트업이 향후 4년 동안 전략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美 기후 기술 스타트업 투자 전년 대비 65% 증가
탄소감축 기술을 개발 중인 기업과 투자자들이 트럼프의 영향력을 느낀다는 건 놀랍지 않다. 그러나 시장조사 기업 피치북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미국 전역의 기후 기술 스타트업에 벤처 캐피털과 사모펀드가 투자한 금액은 50억 달러 이상으로, 전년 대비 약 65%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글로벌 기후 기술 투자가 10% 하락한 것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미국 내 투자 증가는 3년 연속 감소세를 끝냈지만, 여전히 2021년의 정점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상승세가 지속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많은 투자자가 미국 대선을 앞두고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고, 이번 분기의 급등은 그동안의 공백을 메우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보면 지속적인 투자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의 첫 임기 당시 미국은 태양광 패널, 풍력터빈, 전기차를 생산하는 주요 국가인 중국과 수년간 무역 전쟁을 벌였다. 그 갈등과 제로 금리 환경이 맞물리며 미국 내 자체 솔루션에 대한 투자가 촉진됐고, 2017년 42억 달러였던 미국 기후 기술 투자는 2020년 141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기회와 위기가 엇갈리는 분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조 역량 회복을 약속한 만큼 배출량을 줄이면서 산업 생산 효율성까지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은 “순풍을 타고 있다”고 코슬라 벤처스의 파트너 라제시 스와미나탄은 말한다.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수입품 가격을 올리면서 차세대 공장을 미국 내 세울 기회를 만들고 있다.
트럼프의 내각 인사 중 일부는 무탄소 기술을 지지한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미국 원자력 르네상스’를 약속했고, 지열 산업을 ‘미국 에너지 강화 수단’으로 내세운다(다만, 라이트는 과거 수압파쇄 채굴 기술 기업 출신으로 화석연료의 이점을 강하게 주장해온 인물이다).
라제시 스와미나탄은 지열과 핵융합 기술 모두를 정책입안자들과 투자자들이 지원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그의 펀드는 지열 스타트업 알타록 에너지와 핵융합 선도 기업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에 투자했으며, 이 기술이 전력 생산의 탈탄소화, 특히 AI로 인해 증가하는 기저 부하 수요를 대응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본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같은 대형 기술 기업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대비해 지열 및 원자력에너지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는 매사추세츠주 데벤스에서 SPARC(Scalable Processor ARChitecture)이라는 핵융합 실증 설비를 건설 중이다.
AI 붐은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전력망 인프라를 강화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수요도 끌어올리고 있다. 블랙혼 벤처스의 파트너 마이카 코치는 “우리는 지금 AI 슈퍼 사이클에 있다. 그래서 2025년이 매우 낙관적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AI 버블에 대한 우려는 투자자들이 이 기술 전반에 대해 일정 부분 불확실성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일부 조항을 폐지할 경우 타격을 입는 산업도 있다. 해당 법안은 바이든 행정부의 청정 제조업 및 기후 기술 지원 정책의 핵심이었으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포함하고 있었다.
정부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는 그린 수소 및 직접 공기포집(DAC) 기술은 투자자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분야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기술을 지원하는 허브를 관장하는 에너지부 사무소를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수소 허브는 기존대로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 지원 줄어들 가능성 높아
정부는 에너지부 융자 프로그램 사무국(LPO) 같은 제도를 통해서도 기후 기술을 지원한다. 이 사무국은 트럼프의 1차 임기 동안 사실상 중단 상태였지만, 바이든 정부 때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청정 기술 투자를 재개했다.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나트론 에너지는 노스캐롤라이나에 14억 달러 규모의 기가팩토리 설립 자금으로 대규모 융자를 신청했다.
웬델 브룩스 나트론 CEO는 “지난 한 해 긍정적 반응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트럼프는 IRA 및 인프라법에 따라 배정된 일부 자금의 집행을 90일간 중단했다. 이로써 나트론이 필요로 하는 대출의 향방도 불투명해졌다.
브룩스는 “우리는 트럼프 시대에 LPO 융자를 받을 수 있는 모범 사례”라며 미국 내 일자리 창출, 중국과 무관한 공급망 구축을 강조했다. 민간 대출도 가능하지만 금리가 더 낮은 정부 융자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한다.
협업 펀드의 파트너 소피 바칼라는 “IRA 인센티브와 정부 자금이 사라지면 향후 수년간 이런 대규모 기후 프로젝트를 누가 추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자본투자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꽤 큰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클린테크, 이미지 변신 중
점점 더 많은 기업이 ‘기후변화’라는 용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어떤 스타트업은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예컨대, 텍사스에 본사를 둔 지열 에너지 기업 베드록 에너지는 최근 홍보 자료에서 ‘넷제로’, ‘청정에너지’ 등의 표현을 줄이고, 대신 ‘풍부한 에너지’라는 용어를 강조하고 있다고 CEO 조슬린 라이가 밝혔다.
다른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국방 산업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뉴저지 에디슨에 본사를 둔 상장 에너지 저장 기업 Eos 에너지는 자사의 아연 기반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 미국 내에서 생산되며 국방부 조달 기준에 부합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조 마스트란젤로 CEO는 이것이 Eos의 핵심 판매 포인트라고 설명한다.
이 전략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Eos는 3월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와 8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이전에는 펜들턴 해병대 기지에도 납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