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범어동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한경DB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한경DB
'미분양 무덤'으로 불렸던 대구가 확 달라졌다.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수성구 일대를 중심으로 분양권이 거래되는 한편, 프리미엄(웃돈)이 1억원 넘게 붙어있기도 하다. 일부 아파트에선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대구 전역으로 확산될지 주목하고 있다.

15일 네이버 부동산과 대구 수성구 범어동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수성구 범어동에 지어지고 있는 '범어자이(주상복합)' 분양권에는 많게는 1억원이 넘는 웃돈이 형성됐다. 이 단지의 전용 114㎡ 분양권은 14억3488만원으로 웃돈이 1억2000만원 붙었다.

웃돈이 1억원 넘게 붙은 단지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단지 또 다른 전용 114㎡ 분양권도 14억1800만원에 매물이 올라왔는데 이 역시 1억2000만원의 웃돈이, 전용 84㎡ 분양권도 10억6800만원에 나와 웃돈이 1억원 붙었다.

이 단지는 분양을 시작하고 1년 넘게 미분양 물량이 남아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곳이다. 2022년 7월 분양할 때만 해도 부동산 시장 침체 우려와 비싼 분양가에 '고분양가 논란'이 빚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이 외면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 단지는 지난해 10월 남은 미분양 물량을 모두 소진해 '완판'에 성공했다.

인근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지난해 남아 있던 미분양 물량이 모두 거래된 이후 웃돈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며 "대구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했지만 수성구 내에서도, 특히 범어동은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의 한 미분양 아파트 분양 사무소 앞에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미분양 아파트 분양 사무소 앞에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사진=뉴스1
분양권뿐만 아니라 기존 아파트에서도 가격이 빠르게 뛰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수성구 범어동 '두산위브더제니스' 전용 204㎡는 지난달 12일 26억5000만원에 손바뀜했는데 직전 거래가(25억원)보다 1억5000만원 뛰었다. 집값이 치솟았던 2021년 7월 기록한 25억5000만원보다 1억원 높은 금액이다. 범어동 '힐스테이트범어' 전용 74㎡도 지난 2월 11억7000만원에 거래돼 지난해 5월 거래된 10억3500만원보다 1억3500만원 상승했다. 이 면적대 최고가다.

직전 신고가에 버금가는 거래도 이어지고 있다. 범어동 '범어SK뷰' 전용 123㎡는 지난달 1일 17억6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2020년 10월 찍었던 최고가 19억8000만원에 가까워지고 있다.

범어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대장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회복하고 있는 모양새"라면서 "분양권과 대장 단지 매수 시기를 놓친 투자자들이 '벌써 저점이 지나갔느냐'며 아쉬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범어동 C 공인 중개 관계자도 "'범어센트럴푸르지오' 등 대장 단지와 함께 움직이는 차선책을 찾는 투자자와 실수요자들이 늘고 있다"며 "대구 내에서는 물론 외지인들의 문의도 꽤 많이 받았다"고 귀띔했다.

다만 수성구 내에서도 범어동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성구 수성동1가에 지어진 '더샵수성오클레어'는 지난해 10월 입주를 시작했는데 여전히 미분양 물량(2월 말 국토교통부 기준 12가구)이 남아있다. 이 단지 전용 84㎡ 매물 최저가는 6억9900만원에 나와 있는데 분양가 8억1200만원보다 1억1300만원 낮은 수준이다. 수성구 외곽인 파동에서도 분양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거래되는 단지나 분양권이 다수다.

수성구 인근 중구나 동구도 피차일반이다. 중구 태평로3가에 지어지고 있는 H아파트 전용 84㎡ 분양권은 5억5000만원까지 나와 8000만원 마이너스 프리미엄을 기록하고 있다. 수성구와 가까운 동구 신천동에 들어서는 H(주상복합) 아파트 전용 84㎡ 역시 분양가보다 낮은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 크레인이 서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파트 건설 현장에 크레인이 서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파동에 있는 D 공인 중개 관계자는 "범어동을 제외하고는 수성구라고 해도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예정된 공급 물량이 여전히 많고 전셋값이 부진하다 보니 투자자들이 몰리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도 가격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라고 판단했다.

다만 일각에선 지금이 대구 수성구에 투자하기에 적기란 얘기가 나온다. '물량 공세'가 잦아들고 있어서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 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대구 수성구에 지난해 공급된 물량은 7612가구로 적정 수요인 2044가구를 3배 이상 웃도는 물량이 공급됐다. 하지만 올해는 2332가구로 적정 수요를 소폭 웃도는 물량이 예정돼 있고, 2025년과 2026년엔 각각 755가구, 399가구로 급감할 예정이다.

수성구에 있는 한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수성구 핵심 지역인 범어동부터 가격이 조금씩 회복되는 점을 고려하면 큰 시세 차익을 목표로 하는 투자자라면 현시점이 투자 적기로 본다"며 "다만 전셋값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라 자기자본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은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의 '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4874가구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1.8% 늘어난 수준이다. 작년 12월 이후 3개월 연속 늘고 있다. 지방 미분양은 5만2819가구로 전체 미분양 주택의 81.6%를 차지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7개월 연속 증가세다.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지난달 1만1867가구로 한 달 만에 4.4%(504가구) 늘었다.

지역별로는 대구 미분양 물량이 1만124가구로 가장 많다. 이어 △경북(9299가구) △경기(6069가구) △충남(5436가구 △강원(3996가구) △경남(3727가구) △전남(3625가구) △전북(3438가구) △부산(3372가구) △인천(3094가구) 등 순이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