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전투표 장소의 전략적 선택
올 1월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를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한 가지 사실에 놀랐을 듯하다. 투표를 위해 대만인은 후커우(호적)가 있는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사전투표일 이틀간은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는 우리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71.86%라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한국의 20대 대통령선거 투표율 77.1% 못지않게 높은 수치다.

사전투표를 도입한 것은 2013년 4·24 재·보궐선거 때다. 그 전에도 부재자투표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미리 신고해야 하는 등 불편이 컸다. 투표율이 낮으면 선출된 권력의 정통성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투표의 편리성을 높여 투표율을 끌어올리자고 도입한 것이 사전투표제다. 전국 단위 선거에 처음 적용된 건 2014년 지방선거였다. 당시 사전투표율은 11.49%였다. 그 후로 2016년 20대 총선 12.19%, 2017년 대선 26.06%, 2020년 21대 총선 26.69%로 꾸준히 높아졌고 2022년 대선 때는 36.9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진보 측이 유리하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는 호남을 제외하면 사전투표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윤석열 대통령의 득표율이 높았다.

그래서인지 4·10 총선에선 여야 모두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사전투표율이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서로 다른 셈법을 보인 것이다. 사전투표 첫날인 어제 여야 지도부가 투표한 장소가 눈길을 끌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화여대 앞 신촌동 사전투표소를 선택했다. 윤재옥 원내대표가 수원 광교에서 투표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대생 성상납’ 막말을 정조준했다. 반대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전에서 KAIST 학생들과 함께 투표하며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성토했다.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데 사전투표를 십분 활용한 셈이다.

부산항 신항 7부두 개장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부산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그 어느 때보다 격전지가 많은 부산 선거 상황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촌평이 나왔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