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스위스관광청
협조=스위스관광청
'테루아(terroir)'. 포도가 재배되는 환경과 토양의 특성이 와인에 담겨 있음을 나타내는 단어다. 그만큼 와인의 품질에는 기후와 토양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천혜의 자연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나라, 스위스의 와인의 맛이 남다르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스위스 와인은 프로 소믈리에들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른 와인 생산국에 비해 생산량도 적지만, 거의 전량이 자국 내에서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스위스 와인을 맛보려면 스위스에 가야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발레주의 와이너리 전경./협조=스위스관광청
발레주의 와이너리 전경./협조=스위스관광청
스위스의 영토는 한국의 반이 채 되지 않지만, 개성이 다양한 토양이 있다. 여기에서 자라는 250여 개 품종의 포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스위스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레드와인 품종으로는 피노누아·가메이·메를로, 화이트와인 품종으로는 샤슬라·뮐러-투르가우·실바네르가 있다. 매년 연간 1억4800만 병(2019년 기준)을 생산한다. 이 중 1.5% 정도만이 수출된다. 스위스 전국에서는 1500여 명의 생산자가 와인을 만들고 있다. 와인 생산지는 여섯 군데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생산지는 발레주다. 스위스 와인 총 생산량의 3분의 1을 책임진다.
발레주의 포도밭에서 맛보는 스위스 와인과 샤퀴테리./협조=스위스관광청
발레주의 포도밭에서 맛보는 스위스 와인과 샤퀴테리./협조=스위스관광청

유럽에서 가장 높은 포도밭

발레주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면적은 4793만㎡(약 1450만 평)에 이른다. 이는 스위스 전체 포도밭의 약 33%에 달하는 면적이다. 이 중 61%가 레드와인 품종을, 나머지 영역에서 화이트와인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발레주의 포도밭은 론강을 따라 100km 길이로 형성되어 있다. 강의 오른편에는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퓔리와 샤모송, 중앙부의 콩테이와 시옹, 동쪽으로는 잘게쉬 지역이 있다. 강의 왼편에는 작은 포도밭이 점점이 박혀 있다. 지역 상부에는 포도밭이 계곡을 두고 양옆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비슈퍼터미넨 지역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포도밭’이 있다.
로컬 와인을 시음하기 좋은 레 셀리에 드 시옹./협조=스위스관광청
로컬 와인을 시음하기 좋은 레 셀리에 드 시옹./협조=스위스관광청
발레주의 개성 있는 와인을 맛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발레주를 여행하는 것. 발레주관광청에서는 여행자들이 발레의 와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쉽게도 프로그램이 영어·프랑스어·독일어로만 진행되지만,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어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 와인의 힘이니 과감히 도전해볼 것!
포도를 살피는 생산자./협조=스위스관광청
포도를 살피는 생산자./협조=스위스관광청
와인 & 컨트리 하이킹
발레에서 가장 아름다운 와인 산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에서 와인 생산자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가이드 투어로 포도밭을 거니는 투어.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에 둘러싸인 포도밭 한복판에서 셀러에서 내온 21가지의 와인과 함께 발레 특산품으로 구성된 안주 플래터를 맛본다. 날씨가 화창할 때는 포도밭 한가운데에서, 그렇지 않으면 고대의 석조 구조물이 보존되어 있는 와인 창고에서 와인을 맛볼 수 있으니, 어느 쪽이라도 후회가 없다. 캐릭터 풍성한 레드 및 화이트 와인을 맛볼 수 있다. 4~5시간 소요되고 참가비는 약 55스위스프랑(약 8만 원).

발레 와인 박물관
수천 년 동안 와인을 생산해온 발레주 와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발레주만의 특별한 와인 생산 과정과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와인 농가의 면모도 살펴볼 수 있다. 지역의 민속과 풍경, 포도 경작에 사용되던 농기구도 전시되어 있다.
발레주 와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와인 박물관./협조=스위스관광청
발레주 와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와인 박물관./협조=스위스관광청
발레주 와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와인 박물관./협조=스위스관광청
발레주 와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와인 박물관./협조=스위스관광청
발레 와인 패스
와인마니아라면 발레주를 여행하기 전 꼭 준비해야 할 필수품. 쿠폰북 형태로, 발레 전역에 있는 와이너리와 와인셀러, 와인숍에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다. 스폿마다 와인을 100ml씩 테이스팅할 수 있으니 다양한 품종과 포도밭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탐험가에게는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가격은 약 49스위스프랑(약 7만2000원).

발레주의 와인 스폿

도멘 루비네
1947년에 세워진 도멘 루비네는 가업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로, 하이엔드급의 발레산 스페셜티 와인을 선보인다. ‘투르멍탱’과 같은 블렌드 와인은 스위스에서도 고급 와인으로 꼽힌다. 샤토 리흐텐 부지에 있는 포도밭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고,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친환경 와이너리다. 테이스팅 센터에서는 오크통에서 바로 따른 특별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콜린 드 다발
3대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가문의 포도밭.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찾아갈 수 있어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고성을 새롭게 단장한 5성급 호텔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객실에서는 론강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샤토 드 빌라
시에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유서 깊은 고성(古城). 16세기에 지어진 성으로, 실제 귀족 가문의 저택으로 쓰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근사한 와인 바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엄선한 110개의 와인메이커가 생산한 650종류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와인과 함께 이곳만의 특제 라클렛 치즈를 맛볼 수 있는데, 치즈 종류만 해도 다섯 가지다.

레 셀리에 드 시옹
발레주의 로컬 와인을 제대로 탐색해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향하자. 메종 바로네, 메종 봉빈이라는 두 와이너리가 의기투합해 만든 복합와인공간이다. 다양한 테이스팅 행사가 열려서 폭넓은 와인을 맛보기에 좋고, 포도밭 한가운데에 위치한 원두막 ‘게리트’에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도 할 수 있다. 너른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위치 덕분에 건물에 서면 마법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론강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콜린 드 다발의 호텔./협조=스위스관광청
론강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콜린 드 다발의 호텔./협조=스위스관광청
풍성한 와인 수확 축제
발레주에서는 매년 9월마다 포도 수확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포도밭 산책 이벤트’가 그 주인공. 발레주의 포도밭을 따라 나 있는 수로를 따라 8km를 걷는 행사다. 13세기에 만들어진 이 수로는 발레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땅을 개척하고 절벽을 깎아내며 물을 확보하기 위한 발레주 선조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 덕분에 산등성이를 지나는 깎아지른 언덕으로도 물을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비스’라고 불리는 이 수로는 포도밭과 과수원을 따라 1800km 정도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시에르부터 잘게쉬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걷게 된다. 와인잔을 목에 걸고 포도밭을 거닐며 와인 시음도 하고, 라클렛 치즈와 같은 맛깔난 향토 음식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