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해무 사이로 까만 화산섬이 자태를 서서히 드러낸다. 배가 가까워질수록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다. 독도의 모도(母島)이자 동해의 수호 섬, 울릉도다.
대한민국 10대 비경으로 꼽히는 대풍감 전경. 사진=임익순
대한민국 10대 비경으로 꼽히는 대풍감 전경. 사진=임익순
오른쪽으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왼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이 눈에 들어오니 그제야 울릉도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난다. 강릉·묵호·후포·포항항 등에서 3~4시간 여객선을 타고 달리면 저동·도동·사동항을 통해 울릉도에 닿는다. 익숙지 않은 너울성 파도에 애를 먹었으나 이 파도 때문에 1년 중 약 3개월이 결항된다고 하니 입도한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셈이다.

어디부터 둘러봐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일주도로를 따라 울릉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를 추천한다. 총 44.55㎞로, 울릉도 전체를 도는 데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도로가 좁고 터널이 많은 탓에 마주 오는 차량이 보이면 절로 속도를 줄이게 된다. 하지만 느려진 만큼 풍경은 더 크게, 더 천천히 시야에 안긴다. 울릉도는 그런 매력이 있다.
코끼리가 웅크리고 물을 마시는 듯한 공암(코끼리바위)의 모습. 사진=임익순
코끼리가 웅크리고 물을 마시는 듯한 공암(코끼리바위)의 모습. 사진=임익순
30여 분을 달리면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으로 지정된 대풍감이 보인다.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을 타면 걸어서 30분 거리를 단 6분 만에 올라갈 수 있다.

돛단배가 육지로 나가기 위해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 대풍감(待風坎). 용암이 식으며 만들어진 주상절리 절벽이 옥빛 바다를 품었다. 오른쪽으로 시 선을 돌리면 울릉도 북쪽 해안이 펼쳐진다. 코끼리가 물에 코를 담그고 있는 것처럼 보여 코끼리바위란 귀여운 이름이 붙은 공암이 늠름하게 북면을 지키고 있다.

인정도 많아라, 3무(無) 5다(多)의 섬

바다를 끼고 걸을 수 있는 태하 해안산책로. 사진=임익순
바다를 끼고 걸을 수 있는 태하 해안산책로. 사진=임익순
대풍감 밑자락엔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는 태하 해안산책로가 있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터라 일몰을 감상할 요량으로 산책로로 향했다. 해풍에 깎이고 깎인 해안절경을 따라 저 멀리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바다 물질 중인 주민까지 정겨운 풍경이 이어진다.

태하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바로 오징어다. 울릉도 내에서도 오징어를 으뜸으로 쳐주는 곳인데, 일교차가 크고 골바람이 센 덕에 오징어가 잘 마르기 때문이다. 태하마을 어디에서나 햇볕에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덕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교차가 크고 골바람이 강할수록 맛있는 피데기가 탄생한다. 사진=임익순
일교차가 크고 골바람이 강할수록 맛있는 피데기가 탄생한다. 사진=임익순
“다 오늘 잡은 놈들이야. 내일까지 꼬박 하루 말리면 촉촉하고 고소한 반건조 오징어가 되는데, 우린 ‘피데기’라 해요.” 오징어 꿰기에 여념이 없던 주인장이 “내일 왔으면 오징어 맛이라도 보여줬을 텐데”라며 아쉬워한다.

울릉도는 예로부터 도둑·공해·뱀이 없고, 물(水)·미인(美)·돌(石)·바람(風)·향나무(香)가 많아 ‘3무(無) 5다(多)의 섬’이라고 했다. 여기에 정(情)을 하나 추가해 ‘6다(多)의 섬’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어딜 가도 밝은 웃음과 인사가 돌아오니 말이다.

사람 대신 깍새가 사는 섬

죽도, 독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울릉도 부속 섬, 관음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2012년 울릉도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연도교가 놓이면서 관광이 가능해졌다.
2012년 연도교가 놓이며 울릉도에서 도보로 관음도를 여행할 수 있게 됐다. 사진=임익순
2012년 연도교가 놓이며 울릉도에서 도보로 관음도를 여행할 수 있게 됐다. 사진=임익순
관음도는 깍새(슴새)섬이라고도 불리는데, 먹을 것이 귀하던 울릉도 개척 당시 이 새를 잡아먹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고 전해질 정도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개체수가 크게 줄어 독도에서나 깍새를 볼 수 있다.

산책로를 지나면 울릉도와 관음도를 잇는 연도교가 나타난다. 단숨에 건너서는 안 된다. 중간에 멈춰 울릉도 해안가를 돌아보면 주상절리가 자태를 뽐내고, 밑으로는 유난히 푸른 파도가 부서진다. 유람선을 타면 관음도 북쪽 하부 해안절벽에 있는 높이 14m가량의 두 동굴, 관음쌍굴도 볼 수 있다.
세 선녀 전설이 담긴 삼선암의 웅장한 자태. 가장 뒤에 동떨어진 바위가 막내 바위다. 사진=임익순
세 선녀 전설이 담긴 삼선암의 웅장한 자태. 가장 뒤에 동떨어진 바위가 막내 바위다. 사진=임익순
관음도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삼선암(三仙巖)에는 세 선녀에 얽힌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울릉도의 풍경에 반해 하늘로 돌아갈 시간을 놓친 세 선녀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바위가 됐고, 특히 늦장을 부린 막내 바위는 홀로 멀리 동떨어져 풀조차 자라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해·달·별·산·바다에 재미있는 이야기 붙이기를 좋아하고, 유달리 자연전설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이 삼선암에 그대로 담겼다.

송곳산 아래, 절벽 끝 피어난 코스모스

울릉도의 랜드마크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전경. 사진=임익순
울릉도의 랜드마크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전경. 사진=임익순
기품 있는 꽃봉오리를 닮은 건물이 송곳산 줄기 끝자락에 웅크리고 있다. 김찬중 교수가 설계한 ‘힐링스테이 코스모스’는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 ‘2020 월드 럭셔리 호텔 어워즈’에서 연달아 수상하며 울릉도의 랜드마크로 자리했다.

독채 ‘빌라 코스모스’, 펜션 ‘빌라 떼레’는 유려한 곡선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아늑한 아치형 천장, 전통 온돌이 선사하는 포근함에 대자연의 절경이 더해져 관광을 제쳐놓고 하루 온전히 숙소에만 머물고 싶을 정도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로 꾸려지는 조식도 만족스럽다.
전북 울릉 울라웰컴하우스
전북 울릉 울라웰컴하우스
힐링스테이 코스모스를 운영하는 코오롱그룹은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울릉군청과 업무협약 (MOU)을 맺고 저동항 근처에 ‘울라 웰컴하우스’를 오픈했다. 여행정보 안내는 물론 지친 여행자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다.

여행의 완성은 먹부림, 군민 추천 울릉도 맛집

울릉도 호박으로 빚은 호박 막걸리. 사진=임익순
울릉도 호박으로 빚은 호박 막걸리. 사진=임익순
나리촌식당
삼나물·엉겅퀴·부지깽이·명이 등 울릉도의 산나물에 고슬고슬한 밥을 쓱쓱 비벼 먹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 지대인 나리분지에 위치해 독특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나리분지에서만 판매하는 씨껍데기술 또는 울릉도 호박으로 빚은 호박 막걸리를 꼭 곁들일 것.

울릉국화
관음도에서 멀지 않은, 석포길 초입에 위치한 이 카페에 들어서면 작은 정자와 아기자기한 소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울릉도산 호박을 통째로 갈아 넣은 달달한 호박 라떼를 마시며 반짝이는 울릉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경북 지역에서 즐겨 먹는 전통 물회를 맛볼 수 있는 울릉어민식당. 사진=임익순
경북 지역에서 즐겨 먹는 전통 물회를 맛볼 수 있는 울릉어민식당. 사진=임익순
울릉어민식당
경북 지역에서 즐겨 먹는 전통 물회를 이곳에서도 맛볼 수 있다. 설탕·고추장 한 스푼과 물 한 컵을 넣은 뒤 자작하게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울야식당
울릉도 특산물을 이용한 메뉴가 가득한 곳. 고소하고 바삭한 새깜징어·독도새우 튀김과 호박으로 만든 수제 에일이 찰떡궁합이다.

삼정본가식당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가 사랑하는 식당. 울릉도 약소 요리도 맛있지만, 따개비 칼국수를 지나치지 말자. 작은 전복이라 불리는 따개비가 듬뿍 들어가 힘이 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