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봉 칼럼] 공항, 철도 따라 폭주하는 포퓰리즘
아무리 봐도 희한하다. 광주광역시와 대구광역시를 잇는 철도를 만들겠다는 ‘달빛철도 특별법’ 말이다. 이 철도는 특별해서 건설할 때 남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공공사업을 할 때 경제성 등을 미리 검증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시켜달란다. 그것도 모자라 철도 역사의 주변 개발 사업도 예타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우선 참여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담긴 44개 신규 노선 중 오로지 이 철도만 이렇게 대우해달라고 한다.

제일 황당한 대목은 정부 계획인 6조원짜리 단선 일반 철도는 성에 안 차니, 11조3000억원을 들여 복선 고속철도를 지어야겠다는 것이다. 국내 철도 건설 역사상 유례없는 특혜 조항들로 버무려진 이 특별법이 지금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것도 무려 사상 최다인 26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달빛철도의 경제성이 얼마나 낮은지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동일 노선을 오가는 광주대구고속도로만 봐도 답이 나온다. 이 도로의 하루 통행량은 전국 고속도로 평균 통행량의 절반 이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광주 송정역에서 서대구역까지 2시간 정도면 간다. 기차를 타면 30~40분가량 단축되겠지만, 역까지 이동 시간 등을 감안하면 무의미한 차이다. 논란이 커지자 강기정 광주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럼 고속철도 대신 일반 복선 철도로 짓자”고 반발짝 물러섰다. 그런데도 건설비용이 기존 정부안보다 45% 많은 8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법안이 포퓰리즘의 ‘끝판왕’인 이유는 단순히 경제성이 낮은 공공사업에 세금을 쏟아붓기 때문만이 아니다. 문제는 ‘특별법’이라는 꼼수로 철도사업법과 국가재정법, 국토계획법을 무력화하고 있어서다. 사실 달빛철도는 지금도 예타를 면제받을 방법이 있다. 지역 균형발전 사업 등의 경우에는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 그 기준에 맞춰 건설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해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굳이 특별법으로 기준을 허물고, 갖은 특혜를 붙이려고 한다. 그러고는 영호남 화합이라는 상징성이 크다거나 유치 여부도 불확실한 2038년 아시안게임의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식의 ‘아무 말 잔치’를 하고 있다.

이 논란의 원류를 따라가면 시작은 부산 가덕도 신공항이다.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이 공항을 밀어붙이며 사상 처음으로 사회기반시설(SOC) 건설에 특별법을 갖다 붙였다. “부산 엑스포에 맞춰 빨리 지어야 한다”며 예타를 면제하고 인허가 절차도 대거 생략했다. 그렇게 한 번 원칙이 허물어지자 다른 공항들이 달려들었다. 대구와 광주의 공항 이전 특별법이 올해 초 통과됐고 최근엔 수원 군공항 이전 특별법도 발의됐다. 예타 면제는 기본이 됐다. 이들 공항은 한술 더 떠 공항 이전에 초과 비용이 발생하면 정부 예산으로 보전해달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이들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예타도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철도에서도 달빛철도가 예타 면제의 길을 뚫자 ‘옳다구나’ 하고 다른 지역의 철도에도 같은 특혜를 적용해달라는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구간의 예타를 면제하라는 법을 내놨고, 국민의힘은 김해 울산 광역철도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앞으로 각 지방도로와 항구, 터미널을 지을 때도 예타 면제와 국비 지원을 요구할 판이다. 포퓰리즘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재정을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