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내년 20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정보기술(IT) 플랫폼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외국인이 우티 택시에서 내리고 있다. 우티는 우버와 티맵모빌리티가 공동 설립한 조인트벤처(JV)다.   /김범준 기자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내년 20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정보기술(IT) 플랫폼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외국인이 우티 택시에서 내리고 있다. 우티는 우버와 티맵모빌리티가 공동 설립한 조인트벤처(JV)다. /김범준 기자
대만인 유학생 린추위안(24)은 전국 시외버스 승차권 통합예매 서비스인 ‘버스타고’ 앱으로 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예매처에 문의했지만 한국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나 국내 금융회사 통장이 없으면 사용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다. 초고속인터넷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교통, 배달, 예약 등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로 전환됐다. 하지만 이 같은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외국인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시 호출부터 난관

"배달앱 켜면 온통 한글메뉴…'010 번호' 없으면 식당 줄도 못 서"
한국에 도착한 외국인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난관은 모빌리티 서비스다.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우버를 비롯한 승차 공유 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다. 우버는 서비스 초창기인 2013년 한국에서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X’를 출시했지만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택시가 아니라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해 승객을 태우고 돈을 받는 것은 불법이라는 정부 판단이 나오면서 2015년 사업을 접었다.

현재는 티맵모빌리티와 공동 설립한 조인트벤처(JV) 우티를 통해 택시 호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우버 이용자는 영어 앱에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결제도 기존에 등록한 카드로 가능하다. 우티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우버 앱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들은 ‘우티 우회로’만으론 선택지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외국인 관광객은 “우버를 이용하면 차량 선택도 할 수 있고 선택지가 다양한데 한국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제약이 많다”고 했다.

국내 최대 모빌리티 서비스인 카카오T는 아직 외국인이 사용하기 쉽지 않다. 카카오톡에 먼저 가입해야 하고 해외 카드 등록이 불가능해 현장에서 직접 결제해야 한다. 이 회사는 지난달 중국인이 많이 사용하는 위챗, 알리페이, 씨트립 앱을 국내 택시 호출 시스템에 연동했다. 이 앱을 쓰는 중국인은 별도의 과정 없이 카카오T 택시를 호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제공하는 서비스가 대형 택시인 카카오T 벤티와 고급 택시인 카카오T 블랙뿐이다.

○“외국인 염두에 두고 서비스 기획해야”

길 찾기도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다. 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구글 지도는 한국에서 ‘반쪽 성능’에 그치고 있다. 구글이 한국에 서버를 두지 않아 정밀 지도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구글이 서버를 설치하면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구글이 내부 방침을 이유로 거절했다. 그렇다 보니 길 찾기는 물론 맛집이나 명소 등 지도 서비스의 핵심 정보도 미흡한 상황이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이 외국어를 지원하지만,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낮고 점주들이 한글로 입력한 가게 정보와 고객 리뷰를 읽기 어렵다는 제약이 있다.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을 보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려는 관광객도 많지만 역시 허들이 높다. 주요 배달앱 대다수는 외국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외국어를 지원하더라도 각 업체의 음식 정보를 제대로 보기 힘들다. 최근 정부가 배달앱 업체에 외국어 서비스 도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맛집을 찾아가면 생각하지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식당 앞에 줄을 서는 대신 키오스크로 대기 순번을 등록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업체가 늘어났는데, 010으로 시작하는 한국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김민율 씨는 “미국에서 놀러 온 지인들이 맛집 대기를 못 한다고 푸념해서 내 번호를 대신 입력하라고 알려준 적이 있다”며 “한국인은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IT 기업들이 서비스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외국인 이용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외국어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따를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설명이다.

이승우/김세민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