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앞둔 서귀포경찰서 박종남 형사과장, 아들도 새내기 경찰
민생범죄부터 강력범죄까지 빠른 피의자 검거에 앞장

골프공 5만5천개, 소금 700포대, 높이 1.8m 자연석, 전봇대 구리 전선, 4·3유적지 모금함.
37년간 현장 누빈 '베테랑 형사' "사명감 하나로 지금까지"
제주 서귀포경찰서 관할지역에서는 지난 1년여간 이처럼 유별한 도난 신고가 많았다.

잡범이 벌인 사건으로 치부돼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서귀포경찰서 형사과는 예상보다 빠르게 범인들을 잡았다.

실제 지난 2월 6일 남원읍 한남시험림에서 발생한 자연석 도난 사건은 발생 보름이 넘도록 수사에 진척을 보이지 않자 결국 형사과가 사건을 넘겨받았고, 형사과는 사건을 맡은 지 나흘 만에 보란 듯이 일당 11명을 일망타진했다.

이처럼 빠른 검거가 이뤄진 데에는 37년간 경찰 수사 부서에서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수사를 지휘한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 박종남(60) 경정의 역할이 컸다.

오는 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18일 서귀포경찰서에서 그를 만났다.

박 경정은 민주화 시위가 극에 달했던 1987년 경찰에 발을 들였다.

20대 초반 서울경찰청에서 의무경찰 생활을 한 그는 3년간 시위 현장을 지겨울 정도로 다니며 '경찰은 하지 않겠노라'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경을 제대해 검찰직 7급 공무원을 준비하던 중 겹치는 과목이 많아 보게 된 경찰 시험에 합격하면서 경찰이 천직이 됐다.

첫 1년간 성산과 표선 파출소에서 근무했던 그는 여러 선배 눈에 띄어 이듬해부터는 형사가 돼 서귀포 곳곳을 누볐다.

그는 "당시 조직 분위기로는 후배가 선배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고 임무가 주어지면 맞춤형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며 "아무것도 몰랐지만, 건강한 몸뚱이 하나만 믿고 패기롭게 경찰, 그리고 형사 업무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37년간 현장 누빈 '베테랑 형사' "사명감 하나로 지금까지"
형사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이제는 추억거리지만 형사 초임 시절 다 잡았던 절도범을 놓치면서 견책 징계를 받고는 '내 길이 아니구나'란 생각에 사직서를 쓴 적도 있던 그였다.

그는 "마침 그때 경장 시험승진에 합격해 한 번 더 심기일전할 수 있었다"며 "그때 이후로는 범인을 놓친 적이 없다"고 웃었다.

'나쁜 놈은 반드시 잡는다'는 신념으로 30년 넘게 형사 생활을 해 온 그는 강력 사건에서 두각을 보였다.

2021년 7월 중학생 A군이 제주시 조천읍 주거지 2층 다락방에서 포장용으로 쓰이는 청색 면 테이프로 손발이 묶여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그는 A군 어머니의 신고를 받자마자 형사과 8개팀 전원 39명을 투입해 수사를 지휘했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A군 어머니의 과거 동거남인 백모씨와 그의 지인인 김모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범행 신고 1시간 50분 만에 거주지에 숨어있던 김씨를 체포했다.

이어 행방이 묘연했던 백씨 역시 끈질긴 추적 끝에 제주시 삼도동 한 숙박업소에서 긴급체포했다.

불과 사건 발생 20시간 만이었다.

37년간 현장 누빈 '베테랑 형사' "사명감 하나로 지금까지"
백씨는 당시 숙박업소 3층 계단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다 붙잡혔다.

박 경정은 백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봤다.

실제로 백씨는 사건 직후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A군을 살해한 뒤 나 역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조금만 검거가 늦었다면 백씨의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도 애를 먹었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당시 공범인 김씨가 직접 살해에 가담하지는 않았다며 혐의 일부를 강력하게 부인했으나 '김씨와 함께 A군을 살해했다'는 백씨의 자백을 끌어내고 증거물도 확보했다.

결국 이들은 1심에서 징역 30년과 27년을 각각 받고 실형을 살고 있다.

밤낮없이 사건 현장을 누빈 덕에 그는 2008년 경위로 심사승진하고 4년 만인 2012년 경감으로 특진한 데 이어 2021년 서귀포경찰서에서는 최초로 심사승진을 통해 경정이 됐다.

경찰 생활 37년 중 35년을 고향인 서귀포시에서 근무하면서 서귀포시 치안 유지에 앞장섰다.

그는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박 경정은 "새내기 경찰관으로 서울에서 일하는 큰아들에게 항상 '경찰이란 힘든 순간이 많아도, 사명감 하나로 그 힘든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로망 있는 직업'이라고 말한다"며 "물론 지금 세대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사명감 하나로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경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계급을 떠나 정년을 채운 선배들을 보면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내가 정년을 앞두고 있다"며 "정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자체가 굉장히 좋은 이들을 만나 은혜를 입은 것이라 생각하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더라도 사회를 위해 한 사람의 몫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