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발칵 뒤집혔다…"노조가 CCTV 가려도 업무 방해 아냐"
사업장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비닐봉지를 씌워 가리더라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처음 나왔다. 대법원은 근로자 동의를 받지 않고 설치한 CCTV가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효과가 있다면 위법하다고도 봤다. 보안이나 화재 감시 목적으로 설치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 기업이 주요 업무 장소에 CCTV를 설치하려면 미리 근로자의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CCTV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산업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의없이 설치된 CCTV 가린 건 정당 방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 6월 말 업무 방해 혐의로 기소된 전국금속노동조합 타타대우상용차지회 조합원 3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18도1917).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기본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타타대우상용차는 2015년 10월 군산공장에 보안 및 화재 감시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반대한 노조 측과 합의하지 못했다. 이 회사는 노조 동의 없이 그해 11월 CCTV 시험 가동을 시작하고 사내 소식지에 이 사실을 공지했다.

피고들은 “동의가 없었다”고 항의하면서 CCTV 51대에 수차례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웠다. 검찰은 업무방해죄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1·2심 재판부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각각 벌금 70만원을 매겼다. 1·2심 재판부는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해도 피해자의 CCTV 설치·운영을 통한 이익, 피고인들의 행위 내용, 다른 구제수단의 존재 등을 고려하면 정당 행위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GettyImages
GettyImages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전체 CCTV 중 주요 시설물에 설치된 16대와 출입구에 설치된 3대에 비닐봉지를 씌운 행위는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CCTV가) 근로자 다수의 노동 현장과 출퇴근 장면을 촬영하면서 피고인들이 원하지 않음에도 개인 정보가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했다. 또 “CCTV 설치 공사를 시작할 때 근로자들이 동의하지 않았고 회사가 주간만이라도 CCTV를 대체할 방법을 찾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사업장에 CCTV를 설치할 때는 근로자들과 정당한 절차를 거쳐 협의해야 함이 명확해졌다”며 “그렇지 않은 경우엔 근로자가 CCTV 촬영을 막아도 형사상 죄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근로자 불법파업 입증 더 어려워지나

이 판결 이후 기업들은 “근로자들의 불법 쟁의행위를 입증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6월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에게 기업이 손해 배상을 청구할 때는 조합원별로 책임 정도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회 본회의에 올라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중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에들에게 개별적 책임을 묻는 제3조 내용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다는 평가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산업 현장에선 근로자들이 복면을 쓰거나 CCTV를 가린 채 기물을 파괴하는 일이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며 “법원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판결을 낸 데 이어 증거 자료를 확보하는 것마저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GettyImages
GettyImages
그렇지 않아도 기업들은 최근 CCTV와 위치 추적 장치 설치 등이 개인 정보 침해인지를 두고 노동자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반도체 전기 검사업체 테스트테크는 노동자 동의 없이 회사 건물에 CCTV 40여 대를 설치했다가 지난 6월 말 노조에 고소당했다. 한 화학업체는 지난 7월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안전 의무를 지키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전모에 위치 정보 시스템(GPS)을 부착하려고 했지만 노조 반대로 무산됐다.

기업들은 주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법 등 노동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개인 정보 수집을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정보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 6월부터 4개월간 한국 기업 118곳을 대상으로 개인 정보 처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88.1%가 CCTV를 설치하고 있고 61%가 출입 통제를 위해 생체 인식 장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