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등 도시정비 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하던 ‘토양 내 불소 정화기준’이 국제 평균 수준으로 완화될 전망이다. 환경부가 정부 규제심판부 권고에 따라 내년 상반기까지 새 기준안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정비업계에선 사업 지연과 분양가 인상 등의 부작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치약 규제보다 엄격한 토양 '불소 정화' 기준 고친다
규제심판부는 “인체·환경에 위해가 없는 범위 내에서 국제 수준에 맞게 토양 내 불소 정화규제기준안을 새로 마련할 것을 환경부에 권고했다”고 25일 밝혔다.

현행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 기준을 초과하는 불소가 토양에서 발견되면 정화책임자(개발사업자 등)가 토양을 정화해야 한다.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각종 개발사업이 지연되고 사업비가 늘어나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게 규제심판부 판단이다. 최근 5년(2018~2022)간 수도권 내 불소 관련 토양 정화 비용은 5853억원에 달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 재건축의 경우 착공을 앞두고 토양에서 불소가 검출돼 사업이 10개월가량 지연됐다. 정화 비용이 580억원 들어 향후 분양가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인근 방배 6구역 역시 정화 작업에 수백억원의 비용이 소요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공개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교육청이 신청사를 건립하는 용산구 수도여고 부지에서 기준치보다 1.4배 많은 불소가 검출돼 공사가 1년째 지연되고 있다. 정화 작업에는 57억원이 들어갔다.

규제심판부는 “일반적으로 토양 내 불소에 대해 우려 기준을 설정하지 않은 나라가 대부분”이라며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 때문에 사업비 증가와 분양가 상승 등 국민의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준을 세울 당시 불소 함유량이 높은 화강암 지질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2002년 마련된 토양 내 불소 오염 기준에 따르면 주거지역은 400㎎/㎏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3100㎎/㎏) 일본(4000㎎/㎏) 오스트리아(1000㎎/㎏) 등과 비교해 두 배 넘게 높은 기준이다. 규제심판부는 중장기적으로 부지별 실정에 맞게 토양오염을 관리하는 ‘위해성 평가제도’ 중심의 정화체계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규제심판부는 “미국 등 우려 기준을 설정한 국가도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위해성 평가를 통해 부지별 특성에 맞게 정화 목표를 탄력적으로 적용한다”고 했다. 이어 “화강암 등 광물에 함유된 불소는 매우 안정적이어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이유정/박상용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