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 변속·사고기록장치·RPM 저하 분석 등에서 문제점 지적
법원 통한 전문감정 결과와 불일치 부분 등 보완 감정 진행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12살 아이가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유족 측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보완 감정을 신청했다.

최근 국과수로부터 받은 '차량 제동장치에서 제동 불능을 유발할만한 기계적 결함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차량 운전자가 제동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조치다.

그동안 경찰 관계자를 통해 국과수 감정 결과를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던 유족 측은 감정 결과서를 토대로 총 여섯 가지 부분에서 보완 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손자 사망 '급발진 의심 사고' 유족 "국과수 감정 못 믿겠다"
◇ 강제 변속일까, 수동 조작일까…1차 사고 전 RPM 6천400→4천 이유는
6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제조사를 상대로 약 7억6천만원 규모 손해배상을 제기한 운전자 A씨(원고) 측은 최근 소송을 심리 중인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에 보완 감정 신청서를 냈다.

국과수가 최근 법원에 제출한 감정 결과와 이보다 앞서 법원에서 선정한 전문감정기관이 내놓은 사고기록장치(EDR) 감정 결과 간 모순되는 부분이 있고, 두 가지 감정 결과만 가지고는 정확한 원인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법원이 원고 측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앞서 EDR을 감정했던 전문감정기관이 보완 감정을 맡는다.

앞서 이뤄진 감정에서는 단편적인 EDR 자료만 가지고 진행했으나 이번에는 국과수 감정서를 토대로 보완 감정을 진행하는 만큼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원고 측은 우선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하기 직전 분당 회전수(RPM)가 급격히 떨어진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에서 선정한 감정기관(법원 감정기관)은 모닝과 추돌 직전부터 강제로 '킥 다운'이 이뤄지면서 속도와 RPM 증가 현상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킥 다운은 자동변속 차량에서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기어를 변경하면서 급가속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국과수는 모닝과 추돌 직전 중립(N)에 있던 변속레버가 주행(D)으로 변경되고, RPM도 6천400에서 추돌 시 4천으로 급격히 떨어졌다고 분석하면서도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손자 사망 '급발진 의심 사고' 유족 "국과수 감정 못 믿겠다"
◇ 5초간 풀 액셀인데 110㎞→116㎞…EDR이 기록한 '충격 지점'은 어디
원고 측은 EDR 자료상 '마지막 0초'(충격 지점)를 두고 두 기관의 견해가 엇갈린 점도 보완 감정 대상으로 삼았다.

국내 차량은 수십 초 동안 급발진 현상이 나타나 사고가 발생해도 EDR은 에어백이 전개된 때로부터 소급해서 '마지막 5초'만 저장하기 때문에 마지막 0초가 어느 시점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에어백이 터질 정도로 강한 충격이 있어야 EDR은 사고 기록을 저장하되, 그 기록은 '단 5초' 뿐이다.

A씨 차량의 경우 30여초 동안 급가속하며 675m를 달렸다.

이 과정에서 앞에 정지해 있던 모닝 승용차를 시작으로 국도 중앙분리 화단, 콘크리트 전신주, 지하통로 구조물 등 총 네 차례 충격했다.

사고 차량의 EDR은 A씨가 사고 전 마지막 5초 동안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5초 동안 속도는 시속 110㎞에서 116㎞밖에 증가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 같은 정황들과 EDR 기록을 토대로 '4곳의 충격 지점 중 어떤 지점을 마지막 0초로 보느냐'가 급발진 원인을 규명할 핵심 열쇠가 된다.

지점마다 마지막 5초 동안 이동한 거리가 달라지고, 그 거리를 시속 110㎞로 달렸을 때 이동 가능한 거리를 계산함으로써 EDR 기록의 신뢰성을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 감정기관은 마지막 0초가 이번 사고의 마지막 시점인 '지하통로 벽에 부딪혔을 때일 개연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110㎞ 주행 중에 가속 페달을 최대로 하여 5초 동안 밟았다면 적어도 시속 116㎞보다 높은 상태가 될 개연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국과수는 마지막 0초가 지하통로 벽에 부딪히기 전인 '국도 중앙분리 화단을 충격했을 때'라고 봤다.

원고 측은 국과수의 분석대로라면 변속장치에 손상이 없다는 전제하에 시속 110㎞ 주행 중 5초간 풀 액셀로 국도 중앙분리 화단까지 달렸다면 속도는 시속 116㎞ 이상이었어야 한다고 보고 속도에 대한 보완 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원 감정인은 변속장치에 손상이 없었다면 시속 140㎞가 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으나 국과수 감정서에는 변속장치에 손상이 있다는 언급이 전혀 없어 사고 차량의 변속장치에 외형적인 손상이 없는지 재차 확인하는 보완 감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손자 사망 '급발진 의심 사고' 유족 "국과수 감정 못 믿겠다"
◇ 풀 액셀에서 RPM 저하도 의문…"소프트웨어 분석 필요" 주장
원고 측은 EDR 자료상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인 상태에서 충돌 4.5∼5초 전 RPM이 5천900에서 4초 전 4천500으로 떨어지는 현상도 정상적인지 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속페달 변위량은 가속 정도를 퍼센트(%)로 변환해 나타내는 기록으로, 99%부터 '풀 액셀'로 평가된다.

법원 감정기관은 풀 액셀을 전제로 RPM이 5천900에서 4천500으로 떨어지는 현상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국과수 감정서에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자동차 전체 주행 과정의 RPM과 기어 변동 상황 자료만 표로 나와 있을 뿐이었다.

원고 측은 이 밖에 모닝 승용차를 추돌하기 전 속도와 가속페달 변위량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보완 감정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같은 보완 감정 신청은 원고 측이 줄곧 "급발진 사고 규명을 위해서는 하드웨어에 속하는 제동 페달과 EDR뿐만이 아닌, 자동차의 주 컴퓨터이자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를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지난해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씨가 손자를 태우고 운전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12살 손자가 숨졌다.

이 사고로 A씨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또 A씨 가족이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에 5만 명이 동의하면서 관련법 개정 논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