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 칼럼] AI를 수능 시험 과목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기간 내내 찬사를 보낸 한국 교육은 이제 없다. 그가 “한국에선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s)로 존중받고 있다”던 교사가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다. 당시도 비대했던 사교육은 ‘이권 카르텔’로 지목될 정도로 기형화됐다. 이보다 더 큰 위협은 이면에 가려져 있는 ‘시대적 인재 양성’이란 본연의 역할 상실이다. 교권을 회복하고 사교육을 잡는 것만으로 한국의 죽은 교실을 깨울 수는 없다.

물적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은 국가 명운이 달린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의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이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방법으로 수능보다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능 과목은 3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1994년 수능이 본격 시행된 이후 국어·수학·영어를 기본으로 윤리·사회·지리·물리·화학·생물 등을 추가하는 과목 구성은 별반 바뀐 게 없다. 그나마 2017년부터 한국사가 선택에서 필수로 바뀌고, 2018년 영어 절대평가가 도입된 게 과목 차원의 변화라면 변화였다.

이런 답습적 관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에서 부작용의 일단을 드러낸다. 3년마다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이 조사의 최근 결과(2021년)를 보면 한국은 최상위권이었던 읽기·수학·과학 분야에서 모두 중국과 싱가포르에 밀렸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우리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을 의미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수준이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와 함께 최하위 집단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세계는 인공지능(AI) 혁명 중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모든 전공의 학생이 사용할 미래의 언어’로 규정했듯 AI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역량이자 기본 소양이다. 이를 잘 활용하는 국가와 사람이 미래 사회를 주도하게 될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선진국들이 관련 교육체계 구축에 앞다퉈 나서는 배경이다. ‘디지털 후진국’으로 평가받는 일본조차 50만 명의 전문 인력을 키우는 계획을 현실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2025년부터 전체 수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초등학교 0.3%, 중학교 1% 수준에 불과한 정보교과 수업 시간을 두 배로 늘리기로 한 것도 이런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서다. 하지만 고등학교로 가면 정보 교육은 뚝 끊기고 만다. 모든 교육 과정이 입시에 맞춰진 상황에서 수능에 나오지 않는 AI나 코딩 수업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시간 낭비로 여겨지는 탓이다.

AI든, 코딩이든 핵심은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이다.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램 언어를 익히는 단순 암기식 학습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와 논리적 분석을 결합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 과정을 가르치는 게 목표다. 이런 맥락에서 AI는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돌파구이기도 하다.

수능 과목이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 지금이라도 3년이나 5년 후 AI를 수능에 반영하기 위한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이에 맞춰 교과서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사 재교육과 전문 교사도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산업화 시대에 ‘한강의 기적’을 쓰고, 정보화 시대에 ‘IT 강국’ 자리에 오른 한국이 AI 시대에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런 게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 개혁이다. 수능의 난이도를 조정하거나 자격시험화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