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 칼럼] 이런 패륜 부모가 또 어딨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사랑은 물처럼 부모에서 자식에게로 흐르는 게 본능이요 본성이다.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패륜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런 패륜 행각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국민연금은 우리 아이들을 상대로 벌이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다. 새로 가입하는 사람의 돈을 이미 가입한 기성세대에게 지급하는 연금 구조는 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나눠주는 다단계 금융 사기와 다르지 않다. 애초 조금 내고 많이 받아 가도록 설계한 구조 탓이다.

현재의 보험료율(소득 대비 국민연금 납부액)은 9%. 이를 그대로 두면 2055년에 기금이 완전히 고갈된다. 국민연금 수령 자격(만 65세)이 생기는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공무원·군인연금과 달리 연금 지급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명문 규정이 없다. 이런 기만적 농간이 법과 제도라는 미명 아래 버젓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국가 재정 지원이 없다면 매년 지급하는 연금을 그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채워야 한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40대가 될 때쯤엔 전체 급여(근로자 기준)의 42.1%에 해당하는 돈을 회사와 절반씩 나눠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파탄이 예고된 국민연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젊은이는 해지 방법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사망이나 해외 이주 등으로 지극히 제한돼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이런데도 국민연금 개혁은 소리만 요란할 뿐 지지부진하다. 국회와 정부의 공 넘기기에 논의조차 실종 상태다. 유일한 처방은 ‘더 내고, 덜 받는 안’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유력하게 거론하는 모습은 당황스럽다. 보험료율을 9%에서 15%로 대폭 올려도 소득 대체율을 현 40%에서 50%로 높이면 미래 세대 부담은 전혀 줄지 않는다. 개혁을 빙자한 조삼모사식 ‘사기 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빚더미에 오른 나라 살림도 폰지 사기의 전형이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 채무는 5년 새 400조원 넘게 급증해 지난해 1067조원에 달했다. 분 단위로 환산하면 1분에 1억여원씩 무시무시한 속도로 늘고 있다. 이런 탓에 우리나라 신생아는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자마자 2000만원이 넘는 빚을 걸머진다. 지금 추세라면 이들이 성인이 될 때면 1인당 1억원 이상의 부채를 부담할 것이란 전망이다. 부모가 남긴 빚은 상속 포기라도 할 수 있지만 나랏빚은 포기할 수도 없다.

이 같은 눈덩이 국가 부채를 주도하는 게 포퓰리즘이라는 사실은 다 아는 바다. 연 10조원 넘게 들여 노인 기초연금을 확대하고, ‘문재인 케어’를 연 5조원 이상의 혈세로 메우려고 하는 등 정치권의 퍼주기 입법은 점입가경이다. 이런 병폐를 구조적으로 막기 위해 정부가 ‘관리수지 적자 한도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내놓았지만, 국회에서 뒷전으로 밀려 31개월째 낮잠만 자고 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꿀 빤 세대’로 평가하면서 자신들은 ‘저주받은 세대’라고 한탄하는 지경이다. 그런데도 자녀의 미래까지 무작정 끌어다 쓰는 극단적 시도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먹튀도 이런 먹튀가 없다. 늦은 만큼 지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 부모 등골 빼먹는 자식이 아니라, 자식 등골 빼먹은 ‘패륜 부모’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