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의 미래, 수소에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7개 대기업이 모여 ‘코리아 수소 비즈니스 서밋’ 행사를 개최했다. 수소를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보고 수소 생산·공급과 관련 제품 개발, 인프라 등 가치사슬 구축에 협력하기로 했다.

유럽 기업들도 태양광과 풍력에서 나온 전기로 수소를 생산(수전해)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정부가 보조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 독일 등지에서 우리보다 10배 이상 큰 규모로 2020년 중반부터 그린수소 3만t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200㎿급 수전해 설비 투자가 실행되고 있다. 미국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고 청정수소 생산 및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시범사업자를 선정 중이다.

이처럼 여러 나라가 그간의 기술 발전과 지경학적 변화를 반영해 과거 전략을 수정한 정부 계획을 발표했다. 정치 리더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 칠레 등 미래 청정수소 수출국의 총리 또는 장관이 방한해 우리와의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일본은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바탕으로 수전해 사업 경쟁력을 키우고, 호주는 청정수소 생산을 정부가 보조해 이른 시일 내 경제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제 세계가 수소경제의 비전과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수소경제계획을 발표하고 청정수소에 기반한 수소경제 구축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최근 사업자 선정이 공고된 ‘수소연료전지발전 입찰 시장’과 수소버스에 대한 지원 확대도 민간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물론 수소가 석유나 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보편적인 에너지가 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수소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더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치솟은 에너지 가격과 막대한 재정적자로 인해 수소를 최우선 순위로 두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에서 스웨덴과 폴란드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소 폐쇄 시기를 뒤로 미루자는 주장을 할 정도로, 당장 생존 문제가 걸린 상황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본시장의 수소사업에 대한 관심이 배터리나 전기차에 비해 낮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수소의 사업화를 촉진하는 여러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에 따라 선호를 결정하는 듯한 ‘회색, 그린, 블루, 핑크’ 등 색깔 논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기준으로 수소를 구분하는 ‘청정수소인증’ 방식의 통일이 합의되고 있어 머지않아 청정수소의 국제거래가 가능할 것이다. 그린수소 생산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 자금 조달과 수전해 산업의 성숙도, 비싼 생산비 등을 고려해 블루수소와 원자력수소의 역할을 인정하는 현실도 눈여겨봐야겠다. 자동차 등 수송과 발전 분야의 수요 개발과 함께 세계적으로 매년 1억t 이상 수소를 사용하는 석유화학이나 정유 공정 같은 산업 분야에서 청정수소로의 전환이 시급한 과제라는 공감대도 이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얼마 전 수소경제 과제로 대규모 투자 재원과 투자자의 위험을 줄일 방법, 그린수소와 블루수소의 미래,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청정수소 비중 등을 다뤘는데, 사업화 초기 단계에서 경제적, 기술적 도전을 극복할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란 점을 강조했다. 반도체와 배터리가 초기의 회의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우리 주력 산업으로 성장한 사례에 비춰볼 때, 지금 민간이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보이는 수소에서 우리 산업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